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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work) 관점 서평 : 매니지먼트 management : 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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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195

 

 

 

 

이제는 친근하게 까지 느껴진다. 금속태의 안경.



■■■ 한줄평

 

압도적인 경영 대작.




■■■ 평점

 

10.3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반복해서 언급하다시피, 나는 국내 출판된 피터 드러커 관련 도서를 60권 가까이 구매하였다.

 

핵심 저작 가운데 하나로 알고 있었기에 비교적 먼저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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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
(한국어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직역 :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직역 :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직역 :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직역 :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직역 :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직역 :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직역 :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직역 : 방관자의 시대)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직역 : 혁신과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직역 :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직역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직역 :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직역 :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직역 :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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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더보기

 

01. 매니지먼트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5. 육체근로자

  지식근로자와 대비되는, 주로 육체와 숙련을 이용하는 근로자.

  성과를 시간과 결과물로 측정하기 쉽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 피터 드러커가 처음 사용하거나 정립한 단어 또는 개념

 

더보기

 

01. 경영 컨설턴트

   맥킨지의 수장 마빈 바우어와 함께 단어 및 개념을 만듦.(매니지먼트 / 남상진)

 

02. 민영화

   단어 및 개념 창조 - 단절의 시대(1967)

 

03.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04.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5. 지식근로자

  단어 및 개념을 만듦.

 

06. 이노베이션(혁신)을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07. 매니지먼트

  하나의 총체이자 기능으로서 매니지먼트 전체를 체계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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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매니지먼트 : 과제, 책임, 실제>는 1973년에 출간되었다.

 

 

피터 드러커가 63세일 때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0년 이상 지난 시점이다.

 

그때는 이미 피터 드러커에게 GM, GE, 맥킨지, 시어스 로벅, AT&T 등 굴지의 대기업들에 대한 컨설팅 경험이 많이 쌓인 시점이다.





최초의 경영학 책으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저작 <기업의 개념>, 총체로서의 경영을 저술한 <경영의 실제> 이후에 나온 저작이다.



매니지먼트에서 피터 드러커는 <경영의 실제>에서 언급되고 조명된 다양한 과제와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심화, 분석한다.





이 책은 별다른 배경 없이 보더라도 가치가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왜 피터 드러커가 경제(economic)이 아니라 매니지먼트(management, 경영)를 선택했을까?



 

 

 

 

사회의 미래를 짊어진 조직은 배척당해서는 안된다. 매니지먼트 되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매니지먼트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경제인의 종말> (1936, 당시 피터드러커 26세)에서 언급한 것처럼, 피터 드러커가 보기에는 경제적인 것만으로는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할 수 없었을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 때문에 기존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넘쳐나는 ‘사회에 통합되지 못한 인간’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피터 드러커의 문제의식이었다.

 

환경의 변화에는 기술의 발전, 전 세계가 하나의 정보권화, 장인 생산 방식에서 대량생산 방식 산업의 중심 이동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





 

 

경제학은 경제적인 인간만을 가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여러 차원을 가진다.

 

인간은 단수가 아니다.





 

인간은 반드시 기능과 지위가 주어져야만 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

 

반드시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는 않아도 되지만 그 사회 안에서 정당성을 가진 기능과 지위여야만 한다.




경제적은 부분과 함께 기능과 지위를 주지 않는 사회는 한 개인에게는 이해할 수도 없고 불합리하고, 의미 없는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회가 인간에게 쓸모 있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때만 인간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만약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통합되지 못한 인간들이 전체주의의 망령을 불러오는 자원이 된다.

 

통합되지 못한 인간들의 불만과 불안이 임계점에 이르면 이를 자극하여 권력을 잡는 전체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게 된다.

 

그 결과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같은 인물들이 출현하고 전쟁과 파괴가 시작된다.



 

 

현재 필요와 미래의 필요 사이의 균형. 명심하자.



 

피터 드러커는 이처럼 사회의 실패가 전체주의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패턴을 인식했다.



 

특히 그는 1932년 22세 무렵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인차이거’의 부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를 직접 인터뷰하고 관찰할 때 이를 확실히 느꼈다.

 

불안을 자극하는 아돌프 히틀러와 비논리적이지만 극렬하게 반응하는 대중을 보고 피터 드러커는 전체주의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는 그저 존재감 없는 정치인이었지만 피터 드러커만은 그를 예의 주시했다.

 

결국 사회의 실패가 대중에게 드러나자 아돌프 히틀러는 이를 계기로 권력을 잡게 되었고, 피터 드러커는 독일을 탈출하게 되었다.

 

 

결국 고객이다.



피터 드러커가 보기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기가 위해서 시도되었던 다양한 방법들은 모두 실패했다.

 

기존 왕권이나 공화정도 실패했고, 비대한 정부도 실패했다.

 

계속된 전쟁으로 기능과 지위만은 효과적으로 제공했던 나치도 경제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하여 결국 실패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회의 기능부전으로 인한 통합되지 못한 인간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이 진공상태가 되었다.




결국 종전 이후 유일한 사회의 리더로 인정받던 조직에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과제와 책임이 떠넘겨진 것이다.



 

생산성과 업무에 대한 근로자의 만족. 둘 다 성취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사회 유지를 위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과 개인에게 기능과 지위를 제공하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다원적 조직의 효과적인 매니지먼트였다.




피터 드러커가 다원화된 조직의 효과적인 운영 즉 매니지먼트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을 때 전체로서의 매니지먼트는 없었다.

 

각 부분에 대해서는 방대한 서적이 있었다

 

하지만 경영을 폭넓게 다루고 다양한 목표와 그 사이의 균형에 대해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GM의 경영구조를 분석한 <기업의 개념>.

 

경영자, 기업, 근로자, 사회, 정부의 균형을 논의한 <뉴 소사이어티>.

 

총체적인 매니지먼트를 체계화한 <경영의 실제>.

 

 

그리고 체계화된 매니지먼트를 더욱 구체적으로 심화한 본 서 <매니지먼트 : 과제, 책임, 실제>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본 서에서 피터 드러커는 조직과 매니지먼트의 과제이자 책임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였다.




가장 먼저 경제적 책임이다.

 

과거의 기업들은 경제적 성과를 목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피터 드러커는 경제적 성과를 칼로리에 비유하였다.



경제적 성과는 필수적이지만, 기업을 제한하는 요소이고,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칼로리가 목적일 수 없는 것처럼, 피터 드러커의 세계에서 경제적 성과는 기업의 목적일 수 없다.




피터 드러커에게 조직은 사회의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조직은 사회 안에 속한 기관이고, 그만의 특별한 공헌을 목적으로 한다.

 

조직은 반드시 구체적인 기능, 기여, 공헌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경영적 책임을 들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적 책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내가 이해한 것은 경영적 책임이란 사람과 업무를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사람을 조직한다는 것은 사람의 강점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업무를 조직한다는 것은 업무 자체를 사람이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기업이 경영적 책임까지 조직이 감당해야 하는가?





조직이 경제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을 고용해야 한다.



인간은 잠재력이 무한하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고, 들어간 노력 대비 결과물이 더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반복적인 일을 계속해서 잘 수행하도록 설계된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자원처럼 취급될 수 있지만,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스스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완전한 선택권을 가진다.



총을 들고 위협한다 해도, 최저 기준 이상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을 뛰어나게 성취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이는 특히 산업의 중심이 지식, 지식근로자로 넘어가게 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처럼 기업은 경제적 성과 달성을 위해 반드시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조직이 사람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필연이다.




조직 구조, 업무의 구성, 경영방법, 관행, 제도에 따라 사람을 최고로 창조적이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조직은 구체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창조되었지만, 그러기 위해 불가피한 영향력이 생겼고, 그 영향력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과 업무의 조직을 통한 기능과 지위의 제공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예로 나치의 전쟁수행 능력과 지속기간을 언급한다.



나치의 경우 계속되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기능과 지위를 제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실패한 사회에서 통합되지 못한 개인으로 살아가느니, 비록 전쟁을 해야 하지만 자신을 쓸모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나치를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것이 첫 번째 경제적 책임 못지않게 경영적 책임이 중요한 이유이다.





드러커가 세 번째로 언급한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조직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은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활용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기능적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에는 큰 정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독일과 같은 국가에서조차 시민들은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불신한다.



따라서 조직은 다음 사회의 리더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떠안게 되었다.




조직으로서는 사회적 책임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지만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업은 반드시 사회 안에 존재하고, 사회는 언제든지 얼마나 강한 기업이라도 쉽게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경영자들의 반발심은 이해할만하다.



이것은 특히, GM의 최고경영자로서 1세대 전문경영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앨프래드 슬론을 보면 알 수 있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adventures of a bystander> 과 다른 저작에서 앨프래드 슬론은 매우 특이하고 강렬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는 피터 드러커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임원들의 요구에 못 이겨 GM의 조직구조에 대한 분석을 맡기면서도 피터 드러커에게 적극 협조했다.

 

 

 

 

특이한 것은 피터 드러커가 저술한 <기업의 개념>에 대한 앨프래드 슬론의 태도다.

 

 

 

거의 모든 임원들이 <기업의 개념>에서 피터 드러커가 말한 GM의 문제점과 경영 구조에 대한 분권화 요구를 ‘좌익의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앨프래드 슬론은 죽을 때까지 ‘기업의 개념’을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앨프래드 슬론은 뛰어난 전문경영인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당시 애송이였던 피터 드러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프래드 슬론이 <기업의 개념>을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는 <GM과 함께한 나날들>을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것을 보면 약간의 추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앨프래드 슬론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까지 떠맡아야 하는 게 불공정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어쨌든, 피터 드러커의 세계에서는 이렇다.



 

 

기업을 언제든 소멸시킬 수 있는 사회는 지금까지 누구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기업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불가피한 사회적 책임은 통상 그 책임의 범위와 무게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이에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강요된 사회적 책임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먼저 필요한 것은 책임과 권리를 기반으로 하여 기업 자신이 감당해야 할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도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아무리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한다고 해도 기업의 생존조건인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조직은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최저 수익률을 파악해야 한다.

 

책임과 권리의 한정하고 최저 수익률의 제한을 이용하여 사회적 책임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한정해야만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가능한 사회적 책임을 사업적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화학회사인 듀폰이 있다.

 

이들은 플라스틱 사업을 하던 중 오염에 대해 인식했고 오염을 줄이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수익사업화하여 탁월하게 해결하였다.

 

다른 예로는 대형 호텔 체인이, 자사에게 일정 이상 품질의 세탁 서비스를 제공할 업체를 찾을 수 없자 그것을 수익사업화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수익사업화 할 수 없다.

 

수익사업화 할 수 없는 문제는 이에 정직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은 오염에 대해 먼저 비용을 들여 예방하는 공정을 사용하는데 다른 기업들은 오염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연히 앞선 기업이 피해를 볼 것이다.



따라서 수익사업화 할 수 없는 문제를 인식했다면, 이를 먼저 공론화하여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만들도록 유도하고 업계의 리더로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 현명하다.

 

정부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악화되기 전에 처리하지 않는다면, 의식했건 그렇지 못했건 조직은 사회로부터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예로, 포드가 자동차의 안전문제를 인식하고 안전벨트를 포함한 자동차를 먼저 출시했으나, 인기가 좋지 않았다.

 

포드는 시장이 반응하지 않자 안전벨트를 제거한 채 사업을 계속해왔다.

 

시간이 흘러 자동차의 안정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자 포드는 그 좋았던 의도와 실행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리더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랄한 비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을 얻음과 동시에 정부의 다양한 규제들이 생겼다.

 

이런 규제들은 포드는 물론 자동차 업계를 계속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포드가 먼저 안전에 대한 공론화에 힘쓰고 사회적 책임을 강요당하기 전에 이를 활용했다면 분명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조직은 개인의 강점을 사회에 대하여 생산적으로 활용할 때에만 그 정당성을 가진다.



 

 

이상 본 서 매니지먼트 : 과업, 책임, 실제가 피터 드러커 전체적인 저작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논하고, 초반 부분인 기업과 매니지먼트의 3가지 책임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위 내용은 본서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서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결론적으로 피터 드러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로 기능적인 사회를 선택했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실패는 전체주의의 기회가 되어왔다.

 

때문에 사회는 반드시 기능해야 한다.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

 

이전의 방법은 모두 실패했다.

 

현대에 경제적 성과를 내어 개인에 대한 기능과 지위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주체는 조직이다.

 

조직은 경제적 책임, 경영적 책임,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런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효과적인 매니지먼트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다.

 

또 도전해야만 하는 일이다.

 

 

만약 조직도 실패한다면 다시 전체주의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숙련한 것은 배우기 어렵다.

 

하지만 체계화된 것은 분명히 배울 수 있다.



드러커는 매니지먼트를 체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매니지먼트는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한다.





 

당신이 경영자나 임원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떤 것의 성과에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 매니저이다.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그저 유지하려고만 한다면 관리자다.

 

하지만 아무리 직급이 낮아도 자신이 맡은 부분의 성과에 책임을 진다면 매니저다.






 

 

당신은 자신의 성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당신은 자신을 매니지먼트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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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없다.










■■■마무리

 

 

 

속된 말로 빡쎘다.

 

 

 

그러나 중도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연보와 저작을 정리하고,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들과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각각 출처별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내용들이 있어 완벽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만족할 정도는 정리하였다.





드러커의 정보들은 노력해 정리할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이 책은 드러커의 여러 책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히 흡수하기 위한 문제를 만든 책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약 340여 문제인데 아직 정리 중이다.



누가 매니지먼트에 대해 물을 때 이 책의 내용 그대로를 말할 수 있다면, 경영에 대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래되었지만 그 개념만큼은 현재성이 살아있다.



만약 피터 드러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관련 저작을 몇 권 읽어보았다면 반드시 도전해보기 바란다.

 

구체적이고 심화적인 내용 때문에 압박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경영의 실제를 먼저 보아도 좋다.

 

어쨌든 이 책은 매우 가치 있고 수준이 높은 책인데, 그만큼 초심자라면 먼저 쉽게 설명해놓은 책들을 읽기 바란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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