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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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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179 

 

 

 

경영의 바이블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 한줄평

 

경영을 넘어서는, 전무후무한 역작.



■■■ 평점

 

10.3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나는 작가 피터 드러커의 책인 자기 경영노트, 기업가정신, 넥스트 소사이어티 등을 읽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후 구할 수 있는 약 40여 권의 책을 무작정 구매하고 손이 가는 데로 읽고 있다.

 

 

 

 

 

■■■저자 소개




저자 소개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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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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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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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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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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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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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더보기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 저자에 대한 생각

 

피터 드러커.

 

그의 실체가 거대하고 넓기 때문에 뭐라 평하기가 어렵다.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허점을 다시 짚어주고… 이런 상황의 반복이다.








경영자의 자질과 능력이 기업의 성패와 생존을 결정한다.






■■■■■■ 본문 1



개인 경영자(manager)는 모든 종류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그 자체로서 머무를 따름이므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가 없다.

 

자유경쟁 경제체제(competitive economy) 하에서는 무엇보다도 경영자의 자질과 능력이 그 조직의 성공, 그리고 정말이지 생존 그 자체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경영자의 자질과 능력이야말로 자유경쟁 경제체제의 기업이 보유할 수 있는 유일한 효과 우위(effective advantage)이기 때문이다.




 

■■■홍트리버 생각



건물의 토대는 아래 있지만, 기업의 토대는 위에 있다.



드러커 책의 중간중간에 나온 것들을 엮으면 이렇게 해석된다.



 

 

결국 최고경영자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자신의 장점과 단점, 잠재력과 한계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가 행동으로 바뀌고 행동은 결과로 바뀐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경쟁이 심해질수록 최고경영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과거에는 1920년대에는 극소수의 선두 최고경영자만이 시장조사, OR, 추세분석 등을 했지만, 이제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으레 그런 것들을 하리라 기대된다.



 

드러커가 주장하는 바는, 갈수록 최고경영자에게 요구되는 능력과 기술, 자질, 지식 등이 커진다면 필연적으로 최고경영자는 팀으로써 운영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탁월한 목표를 세우고, 꼼꼼히 계획하고, 앞서서 깃발을 들고, 먼저 실행하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성실하게 하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는 목표 달성을 하기 위해 자신의 장점과 단점, 지식을 일정 부분에 한정할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기업의 성장에 맞춰 더 적절하게 한정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최고경영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일의 관점

 

 

경영자는 인적자원이고, 인간이다.

 

 

스스로 상급자의 성과 달성의 일부를 책임지는 사람이 경영자의 정의라면, 현대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영자이고 경영자여야만 한다.

 

경영자는 목표를 세우고,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계획을 세우고, 대안을 평가하고, 실행하고, 결과를 목표와 비교한다.

 

그러나 구조안에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개별 인간이다.

 

 

결국 개별 인간을 계획대로 스스로 헌신하도록 만드는 일이 경영자가 할 일이다.




그럼 사람은 어떤 일에 어떤 상황일 때 헌신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피터 드러커가 2 factor theory를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완전히 맥락이 통한다.

 

 

 

동기 이론 motivation theory, 2 factor theory

 

  위생 요인 hygiene factor 동기부여 요인 motivation factor
특징

불충분하면 일이 싫어진다.

외적 요인이다.

충분하면 일이 좋아진다.

내적 / 본질적 요인이다. intrinsic

만족될 경우 일이 싫지는 않다 일이 좋다.
예시

지위

보상

고용 안정

직무 조건

회사 정책

감독 관행

도전적인 일

인정

책임

개인 성장

의미

 

 

우리가 만능으로 생각하는 인센티브는 위생 요인이다.







좋은 인재를 유인하고 붙잡아 두려면, 의미 있고, 도전적이고, 성장하는 일에, 책임을 지워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일에 창의성을 발휘하고, 헌신하고, 정말로 구별되는 성과를 이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위와 같은 일들이 최대한 일어나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경영자의 동기부여가 실패한다면 능력 있는 사람들은 시간만 대충 때우거나,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대체로 장기적인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하지만, 단기적 필요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근거 없는 도박같은 추측을 하면 안된다. 기준에 따라 예측하고, 상황이 변하면 결정도 바뀌어야 한다.



■■■■■■ 본문 2




08 내일 결과를 얻기 위해 오늘 내려야 할 의사결정은?

 

사실상 모든 경영 의사결정은 장기적 결정이다.

 

10년 계획은 요즘으로 보아 차라리 짧은 것이다.

 

연구개발이든 새로운 공장 건물을 짓는 것이든, 또는 새로운 마케팅 조직이나 신제품을 구상하든 간에 모든 주요한 경영 의사결정은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그리고 그것이 생산적인 것이 될 때까지는, 즉 동원된 인적자원이나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린다.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을 수 없으며,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리고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은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5년, 10년, 또는 15년 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려 깊은 추측”과 “육감에 의한 추측” 사이에는, 그리고 가능성을 따져본 후 합리적인 평가에 기초한 추측과 단순한 도박에 지나지 않는 추측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홍트리버 생각



모든 결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콘텐츠의 미래에서 나온, 연결된 선택들 : 넷플릭스

 

 

하나의 결정은 다른 하나의 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월마트는 자체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지점 간의 거리를 제한하여, 물류비를 절감했다.

그것을 제대로 시행하자 따라 하기 어려운 장점이 되었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 등의 환경에서는 특별히 잘 먹히고, 다른 환경에서는 그 특별한 장점 때문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각각 모순된 결정을 따로따로 내리고는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 못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결국 trade off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비용에 따른 특정 부분 포기를 잘해야만 한다.)




이는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은 24시간을 산다.

 

할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어느 부분에서라도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수의 것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성취는 기본적으로 임계점을 넘는 계단식으로 이루어지며, 올라갈수록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평범한 사람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하면서 특별한 성취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미친 생각이다.



 

 

■■■일의 관점

 

기업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때그때 내려지는 기준 없는 의사결정.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려온 주요한 의사결정을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고 있다면,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는 리스크다.

 

 

따라서 나는 주요한 의사결정 연결도를 그려놓고 항상 그것을 심사숙고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길 추천한다.

 

 

새로 내릴 의사결정이, 각각 이미 수행되는 의사결정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검토 결과 모순된 의사결정을 내릴 뻔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아예 분리하여 실행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새로운 의사결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기존 의사결정을 방해하더라도 실행하고 점차 축소해나가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서로 모순되는 의사결정의 영향을 고려하고 인식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혼란을 방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생산성은 근로자의 동기부여에 달려있고, 그것은 경영자의 책무이다.

 

 

생산성 향상을 달설하려면, 공포의 부재로 인한 공백이 적극적인 동기부여로 채워져야만 한다.



 

■■■■■■ 본문 3



자원으로서의 근로자

 

만약 우리가 근로자를 자원으로 본다면,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는 다른 모든 자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체적인 자원인 구리 또는 수자원에 대해 접근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근로자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작업장의 개인을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말해, 우리는 “인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의 자원으로서 인간은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자기 자신을 오직 스스로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이 가진 역량들은 구체적이고 독특하다.

 

인간은 다른 여느 자원들과는 달리 아예 자신이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절대적인 결정권을 지닌다.

 

독재자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총살시킨다고 위협해도 일을 완수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자원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부여되어야 한다.





■■■홍트리버 생각



결국 동기(motivation)만 남는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게 할 수 있다.

 

 

단순히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기계를 조작하는 근로자에게는 좀 더 빨리 100개를 채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성과 개선이 필요한, 지적인, 질적인 업무에서 사람은 억지로 헌신할 수가 없다.



동기가 최후의 관문으로 남아있다는 점은, 공정한 일이다.



여기에서도 2 factor theory 가 활용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면, 의미 있고, 성장하고, 도전적이고, 인정받고, 책임지도록 일을 하면 된다.






■■■일의 관점

 

경영자의 동기부여 능력은 갈수록 강조될 것이다.

 

듣기, 말하기, 쓰기가 경영자의 가장 강력한 도구로 인정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동기부여 때문이다.

 

 

 

다만 동기는 강제로 주어질 수 없다.

 

동기는 제안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제안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가져가는 것은 근로자이다.



경영자는 근로자의 장점을 의미 있는 일에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동기 부여하고 헌신을 요구할 수 있다.

 

금전적 보상은 극히 제한적이며, 만능도 아니고, 조만간 익숙해진다.

 

 

다만 동기부여에도 기본 바탕은 성실성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홀리는 말과 글을 쓰더라도, 결국 성실성이 바탕되지 않으면 좌초되고 말 것이다.



 

 

■■■삶의 적용점



1. 이 책은 곁에 두고 오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면, 언제고 꺼내서 볼 책이다. 단순히 축약하여 외우는 것만으로 이 책을 통달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아쉬운 점



  1. 더 최근의 기업이 사례로 나오지 못하는 점.







■■■마무리



이 책의 균형감각은 정말 독보적이다.

 

넓은 듯하면서도 미세하고, 좁은 듯 하면서도 거대하다.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중요한 면을 다양하고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함에 있어 특별히 고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탁월하다.

 

드러커는 실제 실행을 하지 않는 대신 현상 이면에 있는 원리에 대해서 집중했다.

 

이 성공적인 trade off는 이 책 '경영의 실제'라는 지극한 결과물로 탄생되었다.

 

어느 시대에 읽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실제 기업, 조직, 팀을 경영하는 사람이거나, 자기 스스로를 경영하는 사람에게도 수많은 시사점을 준다.

 

구할 수 있다면 무조건 사라!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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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 한줄평 경영을 넘어서는, 전무후무한 역작. ■■■ 평점 10.3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나는 작가 피터 드러커의 책인 자기 경영노트, 기업가정신, 넥스트 소사이어티 등을 읽고 완전히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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