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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평
피터 드러커라는 위대한 시대관찰자의 모험.
■■■ 평점
9.9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피터 드러커에 대한 책 약 40여권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그 중 자서전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여 비교적 먼저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2019/10/2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자기 경영 노트 - 피터 드러커
2019/11/1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 - 피터 드러커
2019/12/0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2019/12/15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2019/12/2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년도 | 나이 | 월일 | 드러커 연보 | |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 1909 | . | 11월 19일 |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 | 1911 | 1~2세 | -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 | 1913 | 3~4세 | -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 | 1914 | 4~5세 | 6월 |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 | . | 7월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 | 1915 | 5~6세 | 9월 |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 . | 5~6세 | 11월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 | 1919 | 9~10세 | -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 | . | 9월 |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 | 1920 | 10~11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 | 1923 | 13~14세 | 11월 19일 |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 | 1925 | 15~16세 | -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 | 1927 | 17~18세 | -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 | . | 9월 |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 | 1929 | 19~20세 | 1월 |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 | . | 10월 24일 |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 | . | 10월 25일 |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 | 1930 | 20~21세 | 1월 2일 |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 | 1931 | 21~22세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 | 1932 | 22~23세 | -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 1933 | 23~24세 | 1월 |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 | . | 2월 하순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 | . | 4월 |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 | 1934 | 24~25세 | -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 | 1935 | 25~26세 | -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 1936 | 26~27세 | -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
경제인의 종말 | . | .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7 | 27~28세 | 1월 |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 | . | 2~3월 |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 | . | 4월 하순 |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8 | 28~29세 | 3월 |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 | 1939 | 29~30세 | 연초 |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 | . | 4월 |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 | . | 5월 |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 | . | 8월 |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 | 1940 | 30~31세 | -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 | 1941 | 31~32세 | -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 | . | 가을 |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 | . | 12월 |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 1942 | 32~33세 | -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 | . | 여름 |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 | 1943 | 33~34세 | -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
. | 1944 | 34~35세 | -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 | 1945 | 35~36세 | -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
기업의 개념 | 1946 | 36~37세 | -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 | 1947 | 37~38세 | -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 | 1948 | 38~39세 | -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 | 1949 | 39~40세 | -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 1950 | 40~41세 | 1월 |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 | . | 2월 |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 | . | 10월 |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 | 1951 | 41~42세 | -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 | 1953 | 43~44세 | -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
경영의 실제 | 1954 | 44~45세 | 11월 |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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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 1955 | 45~46세 | -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 | 1956 | 46~47세 | -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 1959 | 49~50세 | 7월 |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 | 1960 | 50~51세 | -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 | 1961 | 51~52세 | -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 | 1963 | 53~54세 | -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
1964 | 54~55세 | -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 1966 | 56~57세 | 6월 |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 | 1967 | 57~58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단절의 시대 | 1969 | 59~60세 | -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 1970 | 60~61세 | -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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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 1971 | 61~62세 | -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1973 | 63~64세 | -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 | . |
. | 1975 | 65~66세 | -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 1976 | 66~67세 | -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 1977 | 66~67세 | . |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1979 | 69~70세 | -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
혼란기의 경영 | 1980 | 70~71세 | - | <격변기의 경영> 출간. |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 1981 | 71~72세 | -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 1982 | 72~73세 | -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 | . |
. | 1983 | 73~74세 | -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 1984 | 74~75세 | -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
기업가 정신 | 1985 | 75~76세 | -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
프런티어의 조건 | 1986 | 76~77세 | -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 1989 | 79~80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
비영리단체의 경영 | 1990 | 80~81세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 1991 | 82~83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 1992 | 83~84세 | - | <미래 기업> 출간. |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 1993 | 83~84세 | -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 1995 | 85~86세 | -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 . | - | <미래의 결단> 출간.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 1996 | 86~87세 | -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 1997 | 87~88세 | 3월 |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 | . | 가을 |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 1998 | 88~89세 | -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
21세기 지식경영 | 1999 | 89~90세 | -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 2001 | 91~92세 | -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 2002 | 92~93세 | 7월 9일 |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 | . | 12월 24일 |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
경영의 지배 | 2003 | 92~93세 | . |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2004 | 94~95세 | -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 2005 | 95세. 별세. | -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
출처 | . | . |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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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 . | . |
년도 | 나이 | 월일 | 드러커 연보 | |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 1909 | . | 11월 19일 |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 | 1911 | 1~2세 | -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 | 1913 | 3~4세 | -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 | 1914 | 4~5세 | 6월 |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 | . | 7월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 | 1915 | 5~6세 | 9월 |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 . | 5~6세 | 11월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 | 1919 | 9~10세 | -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 | . | 9월 |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 | 1920 | 10~11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 | 1923 | 13~14세 | 11월 19일 |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 | 1925 | 15~16세 | -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 | 1927 | 17~18세 | -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 | . | 9월 |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 | 1929 | 19~20세 | 1월 |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 | . | 10월 24일 |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 | . | 10월 25일 |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 | 1930 | 20~21세 | 1월 2일 |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 | 1931 | 21~22세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 | 1932 | 22~23세 | -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 1933 | 23~24세 | 1월 |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 | . | 2월 하순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 | . | 4월 |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 | 1934 | 24~25세 | -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 | 1935 | 25~26세 | -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 1936 | 26~27세 | -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
경제인의 종말 | . | .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7 | 27~28세 | 1월 |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 | . | 2~3월 |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 | . | 4월 하순 |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8 | 28~29세 | 3월 |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 | 1939 | 29~30세 | 연초 |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 | . | 4월 |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 | . | 5월 |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 | . | 8월 |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 | 1940 | 30~31세 | -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 | 1941 | 31~32세 | -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 | . | 가을 |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 | . | 12월 |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 1942 | 32~33세 | -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 | . | 여름 |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 | 1943 | 33~34세 | -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
. | 1944 | 34~35세 | -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 | 1945 | 35~36세 | -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
기업의 개념 | 1946 | 36~37세 | -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 | 1947 | 37~38세 | -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 | 1948 | 38~39세 | -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 | 1949 | 39~40세 | -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 1950 | 40~41세 | 1월 |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 | . | 2월 |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 | . | 10월 |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 | 1951 | 41~42세 | -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 | 1953 | 43~44세 | -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
경영의 실제 | 1954 | 44~45세 | 11월 |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 1955 | 45~46세 | -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 | 1956 | 46~47세 | -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 1959 | 49~50세 | 7월 |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 | 1960 | 50~51세 | -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 | 1961 | 51~52세 | -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 | 1963 | 53~54세 | -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
1964 | 54~55세 | -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 1966 | 56~57세 | 6월 |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 | 1967 | 57~58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단절의 시대 | 1969 | 59~60세 | -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 1970 | 60~61세 | -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 1971 | 61~62세 | -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1973 | 63~64세 | -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 | . |
. | 1975 | 65~66세 | -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 1976 | 66~67세 | -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 1977 | 66~67세 | . |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1979 | 69~70세 | -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
혼란기의 경영 | 1980 | 70~71세 | - | <격변기의 경영> 출간. |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 1981 | 71~72세 | -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 1982 | 72~73세 | -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 | . |
. | 1983 | 73~74세 | -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 1984 | 74~75세 | -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
기업가 정신 | 1985 | 75~76세 | -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
프런티어의 조건 | 1986 | 76~77세 | -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 1989 | 79~80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
비영리단체의 경영 | 1990 | 80~81세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 1991 | 82~83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 1992 | 83~84세 | - | <미래 기업> 출간. |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 1993 | 83~84세 | -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 1995 | 85~86세 | -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 . | - | <미래의 결단> 출간.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 1996 | 86~87세 | -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 1997 | 87~88세 | 3월 |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 | . | 가을 |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 1998 | 88~89세 | -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
21세기 지식경영 | 1999 | 89~90세 | -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 2001 | 91~92세 | -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 2002 | 92~93세 | 7월 9일 |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 | . | 12월 24일 |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
경영의 지배 | 2003 | 92~93세 | . |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2004 | 94~95세 | -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 2005 | 95세. 별세. | -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
출처 | . | . |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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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 . | . |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 저자에 대한 생각
피터 드러커가 탁월하고 독보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해서 더 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읽은 바에 의하면 피터 드러커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던’ 사람이다.
어릴적부터 스스로가 관찰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거의 80이 다 돼서 쓴 자서전의 형식과 내용은 그 백미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의 원제목은 Adventures of a Bystander 이다.
관찰자의 모험.
실제로 책의 내용 또한 어릴 적부터 피터 드러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과 비교하고,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성과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통제해나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재미있고 재치 있고 따끈따끈한 표현들을 보고 있으면서 이보다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한 사례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의 대표적인 최고의 질문,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 를 스스로에게 적용한 것이 틀림없다.
“나의 사업은 무엇인가?”
아마 그는 스스로 위대한 관찰자로서 행동할 때 자신과 세상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알고, 가장 적절한 장소에 자리 잡고, 절대 벗어나지 않은 것.
이 점이 피터 드러커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
■■■■■■ 본문 1
내가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봤을 때는 이미 1930년대였다.
덩치는 크지만 여드름투성이의 어떤 청년이 양복 깃에 커다란 나치당의 만자 표시를 달고 전차에 올랐다.
당시 나도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집에 가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그 전차에 타고 있었다.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천천히 그 청년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우산으로 그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말했다.
“난 네 정치적 견해가 뭔지 관심이 없어.
게다가 나치당의 주장에 일부 동조하는 면도 있지.
넌 좋은 교육을 받은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건 모르는 것 같아.”
그리고 만(卍)자 표시를 가리켰다.
“이 물건이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몰랐나?
누군가의 종교를 비웃는 행위는 누군가의 여드름을 비웃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행동이야.
너도 누가 너를 여드름쟁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거야, 안 그래?"
나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때는 이미 아무도 만자 표시를 비웃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만자 고시 달고 다니는 청년들은 길거리에서 나이 든 노파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두들겨 팰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여드름쟁이는 얌전하게 옷깃에서 만사를 떼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을 더 가서 전차에서 내릴 할머니를 향해 모자를 약간 들어 올려 예의를 표했다.
하지만 나는 나치당과 여러 해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증거, 통계수치, 논리적 주장.......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먹혀들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는 양심에 호소했고 성과가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여드름쟁이가 할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나치의 표식을 달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는 약간의 수치심이나 거북함을 느꼈을 것이다.
■■■홍트리버 생각
사람이 하는 일에 관한 한, 철저하거나 빈틈없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감성적인 문제에 가깝다.
피터 드러커는 자서전의 가장 앞부분에 할머니를 관찰하고 있다.
드러커의 할머니는 배운 것은 많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알고, 무턱대고 사는 것 같으면서도 보통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그러면서도 어수룩하게 보이는 인물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감동받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이론적인 것은 몰랐으나,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옳은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것을 쫓아 현실을 버리지 않고 적응했다.
만약 할머니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피터 드러커는 실제적인 변화를 중심에 두기보다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부분으로 치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영향은 피터 드러커에게 큰 영향을 준 조지프 슘페터가 피터 드러커에게 말한 바와 같다.
결국 한 구체적 개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관심.
그리고 실제적인 변화추구.
분명히 할머니는 피터 드러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일의 관점
앞서 말했다시피, 사람의 변화에 관한 한 그것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인 것이다.
물론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부분은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만약 감성적인 부분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그것은 시작하기도 어렵다.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은 스스로 아주 탁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보통 이렇다.
1)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대부분의 경우)
2)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만, 업무 진행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3)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하고, 감정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진정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힘이 없다.
가장 많은 1)의 경우는 제외하고, 2)의 경우도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2)의 문제점은, 유심히 관찰해보면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는 진짜 원하는 것은 인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자신의 우월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진정한 변화보다 우선하는 경우다.
상황이 변하지 않을수록 자신의 우월성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상황은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업무 외적인 삶에서 자신의 기능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즉 자존감을 충전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2)의 경우에 빠지기 쉽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3번이다.
모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개선할 것, 개선해야 할 방향,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 내는 방법 등 아주 좋은 방법을 구체화하였더라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권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대개 공포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따라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설명과 설득,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사람, 조직구조, 평가기준, 규칙 등을 바꾸어야만 실질적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고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권력을 가진 개인의 행동이 중요한데, 아무리 좋은 다른 조건들을 갖추었더라도 권력을 개인 개인이 그것을 무시해버린다면, 결국 변화는 물 건너간다.
그래서 경영자는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좋은 제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직접 행동으로 수행하는 것은 경영자의 능력이자 그릇이다.
만약 경영자가 좋은 생각과 현실적인 제안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거나, 표면적으로 동의하고 실제적으로는 무시한다면,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직원들은 이내 상심하고 떠나거나 시간만 때우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 본문 2
세 번째 주가 끝날 때면 미스 엘자는 학생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내 옆으로 와서 앉아라. 그래, 내게 말해 보렴. 넌 어떤 과목이 제일 자신 있지?”
내가 대답을 하면 그녀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이번에는 말이다. 무슨 과목이 자신이 없지?”
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그래, 맞다. 네 생각이 정확해.
읽기는 잘하지.
사실 너 같은 책 벌레는 따로 읽기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단다.
그래서 나도 네게 더 이상 읽기 공부를 시킬 생각은 없단다.
이제 네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 하렴.
피터, 너무 어두운 데서 책을 읽다가 눈을 버리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는 내가 안 보고 있는 줄 알고 책상 밑에서 책을 읽더구나,
항상 책상 위에서 읽어라.
다음부터는 네 자리를 창가 쪽으로 옮겨 밝은 곳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해주마.
그리고 철자법도 뛰어나다.
더 이상 철자법을 연습할 필요가 없을 정도야.
단지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짐작으로 철자를 적지 말고 항상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어.”
그리고 덧붙여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너는 네 장점 가운데 하나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아니?”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는 작문에도 능해.
하지만 별로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너도 동의하니?"
이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그것을 목표로 삼자.
일주일에 두 개씩 작문을 해서 제출하렴.
하나는 네가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대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주제를 정해 주마.
그리고 넌 자신의 산수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사실 네 수학실력 은 꽤 우수한 축에 속한단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올해 안으로 저학년에서 가르치는 모든 산수를 다 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거기에는 분수와 백분율, 로그가 포함되지.
너도 로그를 좋아하게 될 거다.
그건 대단히 독창적이거든.
그러고 나면 고학년에서 가르치는 기하학과 대수학을 배울 준비가 끝난 셈이지.”
그리고 그런 거짓말이 계속되면 결국 미스 엘자의 호출을 받게 되고 심한 질책을 당했는데, 그것은 마치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다른 학생들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학년 초에 그녀는 앞으로 내가 잘하고 있는 읽기와 철자 법으로 나를 칭찬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녀는 전에 적으로 칭찬에 인색했고, 설사하다라도 대단하 간략이 연금할 뿐이었다. 하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이번에는 좀 괜찮구나.” 또는 “지난주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수의 천사처럼 우리를 사정없이 야단쳤다. 우리가 특별히 잠재력을 가진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나의 경우는 작문이 거기에 해당됐다.
■■■홍트리버 생각
피터 드러커는 엘자와 소피라는 자매 선생으로부터 탁월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드러커가 인식하는 선생의 유형이다.
선생 - 소피 |
교육자 - 엘자 |
|
가르치는 힘의 원천 |
가르치는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 |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안다. |
교육의 결과로써 제공하는 것 |
깨달음 |
기술 |
전체적인 모습 |
비전을 전달한다 |
학급을 이끈다. |
나에게는 특히 엘자의 유형이 인상 깊었고 배우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피터 드러커도 엘자의 유형을 계속 활용하고 그것을 체계화한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결과와 비교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방법이다.
소피 유형의 선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영향력은 엘자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
■■■일의 관점
드러커에 의하면 조직 내에서의 좋은 관계란 반드시 생산적이어야 한다.
저조한 성과를 무시한 채 서로 간의 관계만 좋게 유지하는 것은 가식일 뿐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그렇다.
영리 기업의 경우 제1의 생존요건으로 경제적 성과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성격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기업의 성과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하면 기업과 그 사람 그리고 나머지 직원들을 위해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 사람 스스로 또는 인사 결정권자나 시스템이 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기업의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하거나 방치하는 것보다 그 사람과 기업,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더 해롭게 하는 일도 없다.
이 같은 해고 내지는 퇴출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
당사자는 공정하지 못하고 비열하다고 자신을 방어할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동의하거나 동요하거나 최소한 집중력을 잃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자는 효과적인 구조와 그에 적절한 사람을 구상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질 실질적 지침 즉 평가기준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평가기준을 주고 그 기준을 달성하였느냐 여부로 그 사람과 계속 일할지 해고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평가기준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상대에게 주어지고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기본적인 성실성이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의 일이다.
■■■■■■ 본문 3
하지만 그는 곧바로 자기의 막강하고 적극적이며 독립적인 팀 안에서 그를 거역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를 갖게 하는 자신만의 자질들을 보여주었다.
슬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연구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 들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드러커 씨, 나는 그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료 이사들이 모두 내 의견을 무시했어요.
따라서 당신의 역량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내가 도울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세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은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다 얻도록 하세요.
나는 당신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연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최고 이사들이 모이는 많은 이에도 참석해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나가고, 이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군요.
물론 나는 우리가 의논하는 어떤 기밀사항도 밖으로 누설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당신이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일을 풀어 가는 방법이지 결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드러커 씨,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조사하고 우리에게 어떤 것을 제안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한 가지만 말해 두겠어요.
GM에는 35명의 부 외장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으면 타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누가 옳은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나를 포함한 경영진 가운데 당신의 제안이나 결론을 마음에 들어할지 아닐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틀리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바로 알려주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한 약속대로 내 연구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끝까지 지원해주고 내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만약 그의 충고를 잘 지켜서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GM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였다.
나는 마빈 코일이 반대하는 것들을 피해 가다가 결국 코일의 멸시만 받게 됐으며 드레이스타트나 윌슨 같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논점들을 강조했지만 그들은 그 점들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홍트리버 생각
본문만 읽더라도 앨프래드 슬론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슬론의 능력에 대해 느낀 점은 이렇다.
비록 동의하지 않더라도 결정된 사안에 끝까지 헌신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적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잔인한 현실을 환영하면서도 중심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
GM의 최고경영자였던 앨프레드 슬론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그의 복잡성 중에 어떤 점을 강조할 것인가 하는 점이 결정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피터 드러커와 슬론의 첫 만남을 선택하기로 했다.
앨프래드 슬론은 모순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슬론은 드러커의 저작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무시했다는 점이다.
드러커가 판단하기로는 자신의 저작(기업의 개념)은 기업이 경제적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슬론은 쩨쩨하지 않지만 아주 철저한 원칙주의자로서 기업의 역할을 경제적 역할로만 제한한다는 점이다.
즉 슬론은 기업의 입장에서 기업이 잘 되기 위한 것들을 위해 확고하고 효과적인 원칙을 세우고 지킨 사람이다.
그런 슬론에게 다원주의적 사회의 자율적인 기업이야말로 전체주의와 독재자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드러커의 미래를 내다본 주장은 터무니없는 짐으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슬론은 기업 최우선주의를 실천한 전문경영인이었고, 피터 드러커는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경영을 도구로 선택한 컨설턴트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는 기업의 경제적 성과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에 비할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지만, 자율적 경제 주체로서의 기업이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각자의 기능에 근거한 제한된 범위 안에서는 수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개인도, 기업이 덜 책임지는 게 옳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유를 빼앗기기는 싫을 것이다.
■■■일의 관점
슬론은 전문경영자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비록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그의 경제적 성과만큼이나 확실하게 거부하였지만)
특히 개인의 선호를 경영과 완전히 분리하는 초인적인 인내심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군주가 선호를 밝히면 신하들은 그에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슬론은 그것을 아주 철저하 게지 킨 것이다.
또 그랬기 때문에 각종 배경과 능력이 다양한 인재들이 슬론의 휘하에 들어와 탁월한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러커가 지켜본 슬론은 경영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 시작한 1세대 전문경영인으로서, 확실한 전문경영인의 초상화를 후대에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
전문경영인의 일이 슬론이 보여준 것처럼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다양한 점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초인적인 능력 수요를, 전문 경영팀으로 전환하여 분산하고 또 자신의 업무와 분리된 사회적 관심을 젊었을 때부터 키우는 것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슬론은 아주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만큼 고독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일인 경영과 완전히 분리된 크라이슬러와 우정을 쌓으면서 그 외로움을 일부나마 해소하였다.
슬론이 지금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드러커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삶의 적용점
1. 일반적인 자서전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배울 점이 많다.
과거에 묻혀 현실에 적응 못한 인물들도 모두 좋은 반면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엘자와 슬론이 가장 흥미로웠다.
엘자의 교육법과 슬론의 원칙을 정리하려고 한다.
■■■아쉬운 점
-
없다.(책이 일반적인 크기였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일반 책 보다 좀 좁은 형태로 700p나 되어 너무 두꺼워 휴대성이 떨어진다.)
■■■마무리
일반적인 자서전이 아니다.
재미와 배울 점 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점에서 탁월하다.
흥미롭지 않은 등장인물이 없고 드러커의 시선 또한 각별하기 때문에 드러커가 느꼈던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흥미를 깊게 음미할 수 있다.
또한 그 인물들 뒤로 깔려있는 지금과 다른 배경은 사뭇 참신하기까지 하다.
날카로우면서도 현장감 있는 묘사는 드러커의 논리력 못지않게 수준이 높다.
특히 슬론, 프로이트 등에 대한 설명과 비교해도 할머니, 크레머, 엘자, 소피 등 다른 인물들의 중요성과 흥미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매우 강력하게 추천한다.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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