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work) 관점 서평 : 나의 이력서 my personal history - 피터 드러커, 남상진

반응형

 

 

 

https://hong30.tistory.com/193

 

 

 

처음본 피터 드러커의 젊은 시절 사진. 호남형이다.



■■■ 한줄평

 

입체적인 피터 드러커를 만나다.




■■■ 평점

 

9.4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반복해서 언급하다시피, 나는 국내 출판된 피터 드러커 관련 도서를 40권 이상 구매하였다.

 

제목을 보고 먼저 읽고 싶어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똑똑한데다 따뜻하고 호남형...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더보기


https://hong30.tistory.com/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https://hong30.tistory.com/ . . . .


https://hong30.tistory.com/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https://hong30.tistory.com/ . . . .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더보기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 저자에 대한 생각

 

 

나는 운이 좋다.

 

 

 

피터 드러커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저작까지 남아있으니까.

 

이 책 ‘나의 이력서’는 드러커의 다른 저작과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드러커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위대함을 달성하였다.




누구나 드러커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러커와 같은 원리로 행동한다면, 드러커만큼 위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떳떳하고 현명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당황스럽다.



드러커에게 한가한 때와 은퇴는 없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으면 안경이...



■■■■■■ 본문 1



그와 인터뷰를 하며 나는 별 생각 없이 “한가할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세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신중한 얼굴로 다시 질문했다.



“한가한 때란 도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한가한 때란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런데 진지하게 대답하려고 한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드러커식 유머인데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예상대로 대답이 궁해진 나를 보고는 씩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한가한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네. 

내 경우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책을 읽지.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집중적으로 말이야.”






■■■홍트리버 생각



매니지먼트나 경영의 실제 같은 대표 저작으로 드러커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책에서 느껴지는 엄밀함 때문에 드러커의 성격이 아주 완고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이해하며 읽다보면 드러커는 소신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더 자세히 읽어보면 드러커는 자신만의 유머를 간직한 사람이다.





 

본문을 쓸 당시 드러커는 95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같은 면을 잃지 않았다.



lifelong learning makes body and mind young.

 

그의 말처럼 계속되는 학습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젊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이것의 그의 태도이다.

 

 

드러커는 짧은 시간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고, 유익한 행동만을 골라서 하는 데다, 계획적으로 한다.

 

 

어떻게 성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의 관점



일에서 한가한 시즌이란 없다.




대부분의 일은 길든 짧든 주기를 가지고 있다.



통상 1년을 주기로 하는 일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보통 2월쯤 시작해서 11월쯤 마무리되고 12~1월까지는 구체적인 업무가 적거나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업무가 줄어드는 때가 성장에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12월 ~ 1월까지의 기간동안에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성장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구체적 업무가 적어지는 시기에는 1주기 동안 한 것들을 돌아보며 스스로 개선할 부분, 그만해야 할 부분, 집중해야 할 부분, 개발해야 할 부분 등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스스로 피드백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때가 더 의도적으로 부지런해야 하는 시기이다.



실제 업무를 많이 진행해야 하는 2~11월까지는 마감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큰 방향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12월~1월까지의 비수기는 아무런 제약도 보탬도 없고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때를 놓치고 구체적인 업무가 몰아치면 반성의 시간은 물 건너간다.




안타깝지만 타성에 젖어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은 통상 2~3년 차인 사람보다 더 나쁜 성과를 내고 안주한다.

 

2~3년 차에 비해 경험이 쌓여있지만 의욕은 더 없다.




어떤 업무를 할 때 새로운 경험에 따라 자동적으로 배워지는 시기는 2~3년이면 끝난다.



의식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1~2년이면 이미 다른 사람의 2~3배 이상을 배울 수도 있다.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낸 사람은 경험은 5년 10년 15년 쌓였지만,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흘려 보낸 시간만큼 꼼수와 변명만 늘기도 한다.

 

그러다 꼰대가 돼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쁠 때는 침착하고 여유있을 때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바쁠때는 침착하게 배운 것을 적용하여 하나씩 처리해 나가면 된다.

 

급하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진행한다면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오히려 다음 주기를 준비하고 자신을 부지런히 성장시켜야 한다.

 

새로운 자극과 기존 방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성장에 대한 긍정적인 욕망을 키워야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균형이다.

 

 

 

항상 눈앞의 일만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방향을 잃거나 의욕이 상실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항상 멀리만 내다보면 너무 막연하고 목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있다.

 

 

 

참고할 점은, 피터 드러커와 같이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면 6개월 ~ 1년 의 주기로 자신의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현실과 목표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작은 팁이다.




강의 하는 피터 드러커. 자연스러워 보인다.

 

주장과 실행력이 강해보이는 도리스 여사.

 

 

 

■■■■■■ 본문 2

 

GM을 조사하면서 얻은 결론 중 가장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책임 있는 노동자가 운영하는 자치적인 공장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전시이기 때문에 관리자가 부족했지만 노동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연대하여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책임 있는 노동자’라는 개념은 그 후 ‘지식노동자’로 바뀌어 내 일생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홍트리버 생각



드러커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것 중에 ‘지식근로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지식근로자는 육체 노동자와 달리 생산 자원으로서의 지식을 가진 근로자이다.



육체 노동자와 비교해서 지식근로자가 특별한 점은, 다른 사람이 지식근로자를 관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식근로자는 오직 스스로만 관리할 수 있다.



따라서 매니지먼트는 지식근로자의 마케팅 책임자로서 여러 전문 지식의 기능을 이해하고 이것들을 생산성 있는 결과물이 되도록 조직해야 한다.

 

반대로 지식근로자는 전문가로서 자신의 분야의 선생이 되어 매니지먼트 즉, 마케팅 책임자를 이해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의 관점

 

(적어도 아직까지는) 드러커는 지식근로자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은 매니지먼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지식근로자는 타인이 관리할 수 없다.

 

스스로 어떤 수준으로, 태도로, 품질로 일하고 있는지는 자신만이 안다.

 

같은 업종의 경력자라면 업무 품질에 대해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한 사람 한사람 일일이 판단해서는 시간과 에너지가 심하게 낭비되며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

 

결국 세세하게 지시하면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스스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지식근로자는 육체노동자와 달리 일방적인 지시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관인 매니지먼트는 지식근로자들을 쓸모 있게 조직하고 각각의 목표와 기여를 이해시켜야 한다.



이것은 과거의 보스와 육체노동자 간의 지시와 이행의 관계가 아니다.

 

 

매니지먼트의 목표에 대한 설명과 지식근로자의 전문 지식으로 기여하는 관계인 것이다.

 

매니지먼트는 지식근로자에게 그가 고생해서 배운 전문지식을 생산성 있게 활용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의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보상보다 중요하다.



뛰어난 지식근로자일수록 진실로 생산성있게 기여하는 곳을 선호하고 그곳에서 더 큰 보상을 바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광이 단단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해보인다.

 

 

집중하는 드러커 박사가 인상깊다.

 

■■■■■■ 본문 3



책을 읽다 보니 피터 드러커는 많은 것을 거절했다.

 

그래서 거절한 내용을 추려보았다.




나치를 거절함.

 - 나치를 폭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 싸웠다.

 

은퇴를 거절함.

- 피터 드러커는 향년인 95세가 되어서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배우고 가르쳤다.

 

한가함을 거절함.

- 그는 한가함을 제거하고 언제나 일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경제학자가 되기를 거절함.

- 케인스와 조지프 슘페터 사이에서 유능한 경제학자로서 길이 열려있었지만, 자신의 관심이 경제가 아니라 사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기업에 관심을 돌렸다.

 

타임지의 수장 헨리 루스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함.

- 타임지의 수장 헨리 루스는 자신의 사단의 일원으로 집요하게 피터 드러커를 영입하려 했으나, 그의 방식을 배우는 한편 가치관이 달랐다고 생각한 드러커는 거절하였다.

 

GE 수장 잭 웰치가 팀의 일원이라고 공언하자 GE와 결별함.

- 피터 드러커는 컨설턴트가 조직의 일원이 되면 해로울 뿐이라며, 20년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하버드대 교수직 4번 거절함.

- 컨설턴트는 반드시 실무가 있어야 하는데, 하버드 교수직은 컨설턴트 일을 동시에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4번이나 거절하였다.





■■■홍트리버 생각

 

 

드러커가 거절한 목록을 보면 대단한 기회들이 많다.




쟁쟁한 인물들이 그를 포섭하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피터 드러커는 50년 넘는 피드백으로 자신의 기준을 단단하게 세웠다.

 

그 결과 장기적 결과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혹을 거절해온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왜 좋아 보이는 기회를 거절했을까?



그는 50년간의 피드백 결과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한 것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들은 소박하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결국 망칠 결정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치에 복종하게 되면 얼마나 달콤한 과실을 빠르게 맛볼 수 있을까?

 

타임지의 헨리 루스 휘하에 들어가 그의 말대로 한다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까?

 

잭 웰치라는 기라성과 계속 팀을 이뤄서 행동한다면 얼마나 큰 명성이 따를까?



그러나 그것은 빠르고 돈을 많이 벌 지언정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가치에 반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피터 드러커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말을 인생에 걸쳐 지킨 위인이다.






■■■일의 관점

 

일에서도 반드시 거절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료에게 별생각 없이 요청한다.




적절한 사람 인지 아닌지, 그것을 꼭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타성에 젖어하는 것인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에 모두 yes라고 대응하다 보면 대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된다.




더욱이 다양한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는 없다.

 

해볼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면서 합리화한다.



누가 하라고 하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좋은 일이니까.

다방면의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딱히 할만한 다른 사람이 없으니까.

기분전환 삼아.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경영자가 아무리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잘 수행한다고 해도, 제1의 책임 즉 조직의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는 실패한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보이는, 긴급한, 칭찬받는 일을 하려는 유혹은 대단히 강렬하다.



보통 해야하는 일은 지루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반복해서 해야 하고 싫은 말도 해야 하며 중압감이 크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유쾌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조직은 가족이 아니고, 책임 없는 관계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적용점

 

구체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는 ‘드러커 박사의 집필 방법’에 대해서 정리해두려고 한다.

 

1. 글의 전체 구조를 수기로 묘사한다.

2. 구조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녹음한다.

3. 녹음된 파일을 보조원에게 주어 원고화 한다.

4. 원고를 가지고 초고를 쓴다.

5. 초고, 2고를 쓰고 3고까지 쓰고 최종 원고를 완성시킨다.



이것을 서평 쓰는데 활용해보려고 한다.





■■■아쉬운 점

 

분량이 200p 정도로 짧다는 것.










■■■마무리

 

 

이 책 ‘나의 이력서’는 확실히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먼저, 보기 어려운 피터 드러커와 도리스 여사, 이외 중요 인물들의 흑백 사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드러커의 에피소드 이후에 나오는 번역가 남상진 님의 배경 설명이 상당히 흥미롭다.

 

본래 서평에 남상진님의 배경 설명을 위주로 할까 하다가, 피터 드러커의 책이므로 피터 드러커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집필 방법이나 사소한 습관들은 다른 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피터 드러커의 연보와 저작 일람도 다른 책들보다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가치가 있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방관자의 시대)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그 맛이 더 살아날 것이다.



 

피터 드러커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책이다.

 

그 외에 피터 드러커의 사상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다른 책들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매니지먼트, 경영의 실제, 자기 경영노트, 기업가정신 등)

 


by 피터 리

 

 

 

이 POST 가 도움이 되었나요?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를 눌러주세요!

 

 

 

 

 

https://hong30.tistory.com/19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