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ong30.tistory.com/186
■■■ 한줄평
프로페셔널을 시대적으로 정의하다.
■■■ 평점
9.8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피터 드러커에 대한 책 약 40여 권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을 어떻게 정의할까?
궁금해서 읽게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내가 쓴 피터 드러커의 책 서평들>
2019/10/2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자기 경영 노트 - 피터 드러커
2019/11/1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 - 피터 드러커
2019/12/0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2019/12/15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2019/12/2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2020/01/04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nuity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년도 | 나이 | 월일 | 드러커 연보 | |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 1909 | . | 11월 19일 |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 | 1911 | 1~2세 | -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 | 1913 | 3~4세 | -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 | 1914 | 4~5세 | 6월 |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 | . | 7월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 | 1915 | 5~6세 | 9월 |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 . | 5~6세 | 11월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 | 1919 | 9~10세 | -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 | . | 9월 |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 | 1920 | 10~11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 | 1923 | 13~14세 | 11월 19일 |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 | 1925 | 15~16세 | -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 | 1927 | 17~18세 | -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 | . | 9월 |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 | 1929 | 19~20세 | 1월 |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 | . | 10월 24일 |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 | . | 10월 25일 |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 | 1930 | 20~21세 | 1월 2일 |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 | 1931 | 21~22세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 | 1932 | 22~23세 | -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 1933 | 23~24세 | 1월 |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 | . | 2월 하순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 | . | 4월 |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 | 1934 | 24~25세 | -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 | 1935 | 25~26세 | -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 1936 | 26~27세 | -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
경제인의 종말 | . | .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7 | 27~28세 | 1월 |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 | . | 2~3월 |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 | . | 4월 하순 |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8 | 28~29세 | 3월 |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 | 1939 | 29~30세 | 연초 |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 | . | 4월 |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 | . | 5월 |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 | . | 8월 |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 | 1940 | 30~31세 | -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 | 1941 | 31~32세 | -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 | . | 가을 |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 | . | 12월 |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 1942 | 32~33세 | -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 | . | 여름 |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 | 1943 | 33~34세 | -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
. | 1944 | 34~35세 | -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 | 1945 | 35~36세 | -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
기업의 개념 | 1946 | 36~37세 | -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 | 1947 | 37~38세 | -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 | 1948 | 38~39세 | -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 | 1949 | 39~40세 | -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 1950 | 40~41세 | 1월 |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 | . | 2월 |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 | . | 10월 |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 | 1951 | 41~42세 | -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 | 1953 | 43~44세 | -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
경영의 실제 | 1954 | 44~45세 | 11월 |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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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 1955 | 45~46세 | -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 | 1956 | 46~47세 | -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 1959 | 49~50세 | 7월 |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 | 1960 | 50~51세 | -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 | 1961 | 51~52세 | -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 | 1963 | 53~54세 | -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
1964 | 54~55세 | -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 1966 | 56~57세 | 6월 |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 | 1967 | 57~58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단절의 시대 | 1969 | 59~60세 | -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 1970 | 60~61세 | -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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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 1971 | 61~62세 | -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1973 | 63~64세 | -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 | . |
. | 1975 | 65~66세 | -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 1976 | 66~67세 | -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 1977 | 66~67세 | . |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1979 | 69~70세 | -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
혼란기의 경영 | 1980 | 70~71세 | - | <격변기의 경영> 출간. |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 1981 | 71~72세 | -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 1982 | 72~73세 | -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 | . |
. | 1983 | 73~74세 | -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 1984 | 74~75세 | -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
기업가 정신 | 1985 | 75~76세 | -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
프런티어의 조건 | 1986 | 76~77세 | -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 1989 | 79~80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
비영리단체의 경영 | 1990 | 80~81세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 1991 | 82~83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 1992 | 83~84세 | - | <미래 기업> 출간. |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 1993 | 83~84세 | -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 1995 | 85~86세 | -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 . | - | <미래의 결단> 출간.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 1996 | 86~87세 | -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 1997 | 87~88세 | 3월 |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 | . | 가을 |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 1998 | 88~89세 | -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
21세기 지식경영 | 1999 | 89~90세 | -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 2001 | 91~92세 | -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 2002 | 92~93세 | 7월 9일 |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 | . | 12월 24일 |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
경영의 지배 | 2003 | 92~93세 | . |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2004 | 94~95세 | -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 2005 | 95세. 별세. | -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
출처 | . | . |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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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 . | . |
년도 | 나이 | 월일 | 드러커 연보 | |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 1909 | . | 11월 19일 |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 | 1911 | 1~2세 | -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 | 1913 | 3~4세 | -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 | 1914 | 4~5세 | 6월 |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 | . | 7월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 | 1915 | 5~6세 | 9월 |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 . | 5~6세 | 11월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 | 1919 | 9~10세 | -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 | . | 9월 |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 | 1920 | 10~11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 | 1923 | 13~14세 | 11월 19일 |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 | 1925 | 15~16세 | -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 | 1927 | 17~18세 | -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 | . | 9월 |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 | 1929 | 19~20세 | 1월 |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 | . | 10월 24일 |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 | . | 10월 25일 |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 | 1930 | 20~21세 | 1월 2일 |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 | 1931 | 21~22세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 | 1932 | 22~23세 | -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 1933 | 23~24세 | 1월 |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 | . | 2월 하순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 | . | 4월 |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 | 1934 | 24~25세 | -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 | 1935 | 25~26세 | -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 1936 | 26~27세 | -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
경제인의 종말 | . | .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7 | 27~28세 | 1월 |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 | . | 2~3월 |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 | . | 4월 하순 |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 | 1938 | 28~29세 | 3월 |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 | 1939 | 29~30세 | 연초 |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 | . | 4월 |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 | . | 5월 |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 | . | 8월 |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 | 1940 | 30~31세 | -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 | 1941 | 31~32세 | -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 | . | 가을 |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 | . | 12월 |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 1942 | 32~33세 | -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 | . | 여름 |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 | 1943 | 33~34세 | -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
. | 1944 | 34~35세 | -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 | 1945 | 35~36세 | -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
기업의 개념 | 1946 | 36~37세 | -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 | 1947 | 37~38세 | -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 | 1948 | 38~39세 | -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 | 1949 | 39~40세 | -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 1950 | 40~41세 | 1월 |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 | . | 2월 |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 | . | 10월 |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 | 1951 | 41~42세 | -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 | 1953 | 43~44세 | -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
경영의 실제 | 1954 | 44~45세 | 11월 |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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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 1955 | 45~46세 | -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 | 1956 | 46~47세 | -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 1959 | 49~50세 | 7월 |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 | 1960 | 50~51세 | -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 | 1961 | 51~52세 | -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 | 1963 | 53~54세 | -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
1964 | 54~55세 | -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 1966 | 56~57세 | 6월 |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 | 1967 | 57~58세 | -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단절의 시대 | 1969 | 59~60세 | -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 1970 | 60~61세 | -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 1971 | 61~62세 | -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1973 | 63~64세 | -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 | . |
. | 1975 | 65~66세 | -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 1976 | 66~67세 | -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 1977 | 66~67세 | . |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1979 | 69~70세 | -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
혼란기의 경영 | 1980 | 70~71세 | - | <격변기의 경영> 출간. |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 1981 | 71~72세 | -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 1982 | 72~73세 | -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 | . |
. | 1983 | 73~74세 | -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 1984 | 74~75세 | -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
기업가 정신 | 1985 | 75~76세 | -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
프런티어의 조건 | 1986 | 76~77세 | -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 1989 | 79~80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
비영리단체의 경영 | 1990 | 80~81세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 1991 | 82~83세 | -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 1992 | 83~84세 | - | <미래 기업> 출간. |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 1993 | 83~84세 | -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 1995 | 85~86세 | -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 . | - | <미래의 결단> 출간. |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 1996 | 86~87세 | -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 1997 | 87~88세 | 3월 |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 | . | 가을 |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 1998 | 88~89세 | -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
21세기 지식경영 | 1999 | 89~90세 | -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 2001 | 91~92세 | -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 2002 | 92~93세 | 7월 9일 |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 | . | 12월 24일 |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
경영의 지배 | 2003 | 92~93세 | . |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2004 | 94~95세 | -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 2005 | 95세. 별세. | -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
출처 | . | . |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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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ng30.tistory.com/ | . | . | . | . |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 저자에 대한 생각
피터 드러커는 육체 작업에서 지식노동으로의 사회변화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생산성의 정의도 변경되어야 옳다.
생산성의 정의가 변경되면 뛰어난 근로자로서 특히 전문가(프로페셔널)로서 요구되는 자질과 태도도 바뀌게 된다.
피터 드러커는 더 열심히 일하기(work harder)가 아니라 더 현명하게 일하기(work smarter)를 요구한다.
그것은 작업에 지식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과 외에 다른 것들은 무의미하다.
또한 지식 작업은 질에 크게 의존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육체 작업처럼 시간과 양에 의존해 평가하기도 어렵고 또 평가하기가 불가능 할런지도 모른다.
진정한 프로페셔널로서 삶을 마감한 피터 드러커의 노고와 지식에 경의를 표한다.
■■■■■■ 본문 1
자본도 기술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처음으로 배워야 했던 것은 지식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결코 자본이 노동(즉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새로운 기술 그 자체로는 지식노동의 생산성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생산성을 향상하느냐 아니면 저하시키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그것(자본과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병원 생산성의 대폭적 향상만이 의료비의 급증을 막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생산성의 대폭적인 향상은 보다 현명하게일하기(working smater)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홍트리버 생각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 현명하게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는 지식을 육체노동에 적용한 것이다.
드러커에 의하면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를 실행하기 전까지 육체노동의 생산성은 별다른 향상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테일러가 육체 작업에 대하여 어떻게 how 수행해야 하는가?라고 올바른 질문 하자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과학적 관리 즉 지식의 적용을 지식 작업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드러커가 언급한 것은 지식 작업의 생산성 향상에서는 테일러처럼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식작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how) 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그리고 왜 해야 하는가? (why) 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만 한다.
특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제거해야만 한다.
■■■일의 관점
육체 작업과 달리 지식 작업에 있어서는 무슨 이유 때문에 ‘어떤 작업을(what), 왜(why) 해야 하는가?’라고 먼저 물어야 하는가?
드러커는 시어스 로벅(sears roebuck)이라는 사례를 언급한다.
시어스 로벅은 우편 주문 판매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주문 봉투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아예 ‘제거’해버렸다.
당시에는 지폐나 수표가 없어 무게를 달아보면 얼마의 돈이 들어 있는지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편 주문처리 작업에서 ‘어떻게(how) 해야 하는가’를 먼저 질문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어스 로벅은 2년간의 개선 작업을 거친 끝에 모든 우편 주문 작업 과정의 생산성을 10배나 증가시켰다.
결국 더 노력하기가 아니라 더 현명하게 일하기의 시작으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면밀히 찾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특히 드러커가 자주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일단 한번 생긴 업무나 관행은 지독히 오래 살아남는다.
따라서 이런 분석 및 제거작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버릴 것이 뻔하다.
■■■■■■ 본문 2
지금까지 내가 관찰해온 바로는, 효과적인 지식 근로자는 자기가 맡은 일부터 먼저 검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먼저 고려한다.
그것은 다음 3단계 프로세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지식 근로자의 목표 달성 능력에 기초적인 역할을 한다.
- 시간을 기록한다.
- 시간을 관리한다.
- 시간을 통합한다.
시간의 공급은 완전히 비탄력적이다.
시간은 철저히 대체 불가능하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사람들은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 실제로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홍트리버 생각
시간은 유일한 자원이다.
물론 다른 자원을 통해 시간을 절약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절대적 시간을 구입할 수는 없다.
내가 지난날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일이다.
시간은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객관성 확보인데, 그것은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관적 시간은 매우 편차가 크기 때문에 시간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이 실제로 낭비하는 시간은 두뇌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합리화를 위해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데 천재가 아닌 사람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기록을 해야만 한다.
중요한 무엇을 하자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는데, 정작 그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시간을 거의 쓰고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서는, 즉 시간을 목표에 도움이 되도록 조직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의 관점
시간의
1)기록
2)관리
3)통합.
일단 시간을 기록하고 나면 99%의 사람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기록한 시간 사용 내역은 심하게 낭비되고 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시간 사용 내역을 습관적으로 기록하는 일은, 일정 이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끔 하는 경고음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강력하게 추천한다.
적당한 주기로 자신의 시간 사용내역을 되짚어봄으로써 쓸데없는데 시간을 쓰는 것을 체계적으로 폐기 해가야 한다.
그렇지 쓸데없는 일이 생산성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다음 드러커가 언급한 것은 관리인데, 먼저 하지 않아도 될 일,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에 쓰는 시간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게 하고 몇 가지 소수의 일에 집중하도록 한다.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의 양보다, 할 수도 있는 일들의 양이 언제나 많다.
따라서 내가 할 분야, 할 일을 한정 짓는 원칙, 기준이 없다면 사실상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할 것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의 기준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기준으로 정해지게 된다.
그다음 드러커의 특별한 점이 나오는데, 그것은 시간의 통합이다.
드러커는 끊겨있는 시간, 예를 들면 10분 단위로 끊겨 있는 시간이 지식 작업에 거의 쓸모가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획서의 초안을 잡는 일은 끊겨있는 10분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작업할 수가 없다.(드러커는 기획서의 초안에 대해 5~6시간 정도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그것은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최소한 30분 이상의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진척이 없다.
따라서 시간을 기록하고, 쓸데없는 일을 제거하고 난 뒤에는 시간을 통합하는 작업을 거쳐, 실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들에 사용할 시간을 확보해 두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특히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예를 몇 개 들면서 출근 전 하루 2시간 정도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드러커는 추천한다.
일단 초안을 잡는 일이 끝나게 되면, 부분별로 수정하는 일은 짧게 나눠진 시간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출근 전부터 오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일하고, 오후에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나 부분 수정 등 짧게 나눠진 시간으로도 가능한 일을 하는 것이 드러커의 조언이라고 하겠다.
■■■■■■ 본문 3
물론 리더십은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십은 ‘리더십 자질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으며, ‘카리스마’와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리더십의 본질은 오직 그것이 달성하는 성과에 있다.
리더십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 아니며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사실상 리더십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리더십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리더십인가 하는 점이다.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보다 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는 없었다.
또한, 아이젠하워, 조지 마셜, 해리 트루먼, 아데나워, 링컨과 같이 카리스마적인 색채가 없었지만 효과적인 리더가 많다.
정말이지, 카리스마는 리더들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하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헛된 실패를 맛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상식으로 통한다.
■■■홍트리버 생각
피터 드러커는 정말 확고한 초점을 가지고 있다.
리더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요즘 보통사람들인데, 피터 드러커는 그것에 조차 질문을 던지고 수단으로 인식한다.
결국 리더십은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특히 피터 드러커는 강한 카리스마를 오히려 리더십을 해치는 요소로 인식했다.
카리스마에 대한 피터 드러커의 반감은 히틀러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참고로, 피터 드러커는 히틀러가 힘이 없을 때부터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는 히틀러를 눈여겨보았다.
2번에 걸친 반나치적 서적을 출판하고 그 2가지 모두가 금서로 불태워지자 위기를 예감하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개인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을수록 아주 치명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을 자행할 확률이 높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의 관점
드러커는 효과적인 리더십은 일, 책임, 신뢰라고 말한다.
1) 일
리더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 즉 목표가 달성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2) 책임
리더는 리더십을 특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리더가 무분별하게 관대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일이 일단 잘못되었을 때에는 - 일이란 항상 잘못되기 마련이다 - 그들은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총사령관이었던 마셜 장군이 그랬다.
또 트루먼의 유명한 말, 즉 “모든 책임은 여기에서.”라는 말은 아직도 리더십에 관한 훌륭한 정의다.
3) 신뢰
신뢰 없이 리더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리더를 인간적으로 좋아해야 할 필요도, 의견을 같이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리더의 언행이 일치하고 있다는 확신, 즉 신뢰 또는 성실(intergrity)에 대한 확신은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리더십은 영리함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관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리더를 일이 되게 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타고난 카리스마를 없애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훈련 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더를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본다면, 사실 그렇게 메리트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의 적용점
1. 사실 언급한 내용 외에 책의 전체가 누구에게나 적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차를 간단히 언급하겠다.
1장. 지식의 전환과 지식 사회
2장. 조직 사회와 지식 근로자.
3장. 생산성을 어떻게 향상할 것인가
4장. 어떻게 성과를 올릴 것인가
5장. 공헌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라.
6장. 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
7장.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라.
8장.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
9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
10장. 효과적인 의사결정 방법
11장.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12장. 정보 중심 조직의 특성
13장. 리더십은 어떻게 발휘하는가
14장. 강점을 활용하는 방법
15장. 경영 혁신의 원리와 방법
16장.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라.
17장. 교육받은 사람이란 누구인가
18장.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 가
■■■아쉬운 점
-
없다.
■■■마무리
지금까지 읽은 드러커의 저작들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제목에 충실하다.
즉 사회변화에 대한 내용을 적절히 언급했다.
이어서는 앞으로 심화될 지식사회에서 프로페셔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료하게 정리했다.
현대는, 따지면 정말 소수의 육체 노동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지식근로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는 더해지며, 다양한 도구들의 등장으로 인해 책의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도 하다.
앞으로는 더 좋은 도구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의 향상과 마찬가지로, 도구들을 활용하는 사람이 목표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강력하게 추천한다.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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