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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025 리바이어던(Leviathan) - 토머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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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국내도서
저자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 신재일역
출판 : 서해문집 200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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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9.2



혼란의 시대에서 외치는 평화를 향한 엄밀하고 처절한 외침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 동의할 수도 없다. 그만큼 시대가 흐른것이다.



하지만 시대상과 홉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홉스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못할망정, 홉스의 갈망을 이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홉스는 1588에 태어나 1679에 죽었다.


이렇다할 정치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는 홉스는 그야말로 혼란에 대한 혐오와 평화에 대한 집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느낌을 주었다.



자기 스스로 태어날때부터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홉스의 생 전반은 폭력과 공포와 혼란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안정된 부분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홉스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든 종식시키려고 한 것이고, 그 결과로 나온것이 리바이어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계약설의 시초가 된 이 책은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내용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홉스의 시선에서는 이대로 혼란속에서 전쟁과 죽음을 겪느니, 차라리 절대왕정의 단점을 수용해 힘에 의한 평화라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혼란과 전쟁속에서 살아온 홉스에게는 인간은 더없이 이기적인 전쟁광이었기에 더더욱 힘에 의한 평화 밖에 답이 없었다.





평소 내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묘하지만 비슷했다.



나는 같은 언어나 단어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심히 다른 경우를 많이 봤다.


특히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심하다.




너는 자유로운가?


라고 했을때, 이 대답은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구는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자유롭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 부자유스럽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대화 이전에 단어의 정의에 대해서 상호 동의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정의 면에서 홉스는 강박이나 광기로 보일정도로 엄밀하다.


책 내용의 절반이상이 정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같다. ~~은 ~~~한 ~~이다. 같은 말이 수없이 나온다. 



홉스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에게 큰 영향을 받아, 과학적 사고를 자신의 모든 것에 적용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 한다. 



또한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스콜라학파를 계속하여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또한 나도 동의한다. 알맹이 없이 길게 그것도 추상적인 단어들로 아무리 늘어낸다 한들 그 의미는 모호할 뿐인 경우가 너무 많고 싫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스콜라적인 표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 이해하는게 힘들고, 둘째 이해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이 단어들을 왜 쓴거지? 라는 생각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홉스의 주장은 무엇일까?



내가 올바로 이해했다면, 홉스는 대략 이렇게 주장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무한정한 자유가 있다. 대신 그에 따르는 무한정한 불안도 같이 있다.


따라서 무한정한 자유와 불안을 같이 가지기 보다, 공통의 우월자를 두고 자유의 일부를 포기함과 동시에 안전과 평화를 얻게 된다.


만일 공동의 심판자를 두지 않으면 그것은 끝없이 계속된다.


공동의 심판자에게 모든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할 힘이 없다면, 심판자는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공종의 심판자인 국가/왕에게는 거의 신과같은 힘이 필수불가결하다.(하지만 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멈추기 위한 수단이므로,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또한 권력이 나누어질 경우, 서로 싸우는 혼란이 생기므로, 단 하나, 단 한명의 왕에게 권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왕에게 무한에 가까운 권력을 주는 것은 타당하고, 시민은 혼란을 피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이를 따라야 하고, 거부하는 것은 국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로크와 홉스는 다르다.


로크는 시민의 권리를 통치자에게 위임하는 것인 반면, 홉스는 위임은 다 허상이기 때문에 권리의 양도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아주 제한적으로 국민들이 저항할 여지는 남겨두었지만 사실상 되돌려받기 힘들다.)


홉스가 보기에 위임이라는 것은 언제든 다시 거둬갈 수 있는 가짜 힘이고, 그것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따라서 국민은 이미 성립된 국가/왕에게 거의 절대적인 힘을 양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로크나 루소의 견해가 현대시민사회의 견해와 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꽤 있을 지언정, 공개적으로 부정할 사람은 몇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책인데...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왕정을 옹호하기 위해, 논리를 편 홉스이지만 왕으로부터는 외면받았다.


또 반대파인 성직자들에게도 무신론자라며 외면받았다.



홉스가 왕과 종교계라는 양대축 모두에게 외면받다니 아이러니하다.




당시 시대상으로 보아 시민들이 양도한 권리를 가지고 통치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왕의 구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왕은 아무리 홉스가 일단 위임된 권력은 다시 가져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아도, 그 뿌리가 시민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왕이 선택한 것은, 국민들이 절대불가침한 신의 선택으로 왕이 권력을 가진다는 왕권신수설이다. 이것은 왕 위에는 신밖에 없고, 어떤 논리에 의해서건 왕의 명령에 따라야한다는, 그야말로 달콤한 논리였다.




홉스는 결국 대작을 남기고 쓸쓸히 죽었다.



책에도 나왔다시피, 현명한 왕이 자신의 책을 읽고 그 사상을 세상에 펼치길 원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헛된일은 아니었다.



홉스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로크 볼테르 루소 같은 사람들이 후대를 바꾸었으니 말이다.




한편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정치적으로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는 점이나, 인간의 탐욕과 악의에 집중했다는 점이나, 강력한 군주로 인한 힘의 균형을 원했다는 점 등등...


다음 책은 마키아벨리 - 군주론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든다.





의미있는 고전이 있다면, 반드시 그 안에 들어갈 책이라고 자신한다.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크다.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람



시민사회의 태동을 알고 싶은 사람


절대왕정의 종말기에 나타난 혼란때문에 생긴 역작


고전의 저력을 느끼고 싶은 사람


왜 시민이 국가인지 알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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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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