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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026 군주론 - 마키아벨리 1/2 (신동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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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국내도서
저자 :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 신동준 역
출판 : 인간사랑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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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9.6



수백년이 지나도 논란 중심에선 비극적 지성, 그리고 결정체



과연 명저다.



과거 그냥 유명하니까 읽어봐야지 하고 초반부를 읽다 포기한 책인데, 십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야말로 꿀이고 생명수같은 책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그 사이에 내가 군주론의 일부중 일부라도 흡수할 준비가 되어서인가?


어쨋거나, 내가 반드시 여러번 읽어야 할 책 중 하나로 꼽는다.





내가 그냥 문장 한두개로 알았던 마키아벨리가 아니다.



앞으로 단순하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문장으로 마키아벨리 혹은 마키아벨리즘을 논한다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고 웃겠다.


시대적 상황과 마키아벨리가 의도한 점, 또 실제 현실정치를 날카롭게 통찰한 점을 무시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 전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국 마키아벨리는 현실적으로 전쟁과 정치싸움이 끝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 것이다.(라고 나는 파악했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표출했던 문제의식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마키아벨리는 토머스 홉스보다 100년은 이른 시대를 살았지만, 홉스보다 100년은 더 진보한 생각을 펼쳤다.



군주의 자질을 강조했던 마키아벨리지만 그 군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것은 군중의 증오와 경멸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자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민주주의자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내가 보기엔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진영에 머물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저 선악을 배제한체 현실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기술적으로 써내린 것이다.


홍수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고, 또 물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물에는 선악이 없다.


군주론은 맥락상 인간 성질의 특징과 그 성질의 활용을 기록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이 천재를 만들어 낸것은 극도의 혼란이었다는것이 비극이자면 비극이다.


반대로 이런 전쟁의 참혹함과 불안이 없었더라면, 마키아벨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p85    즉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뒤로 미루면 오히려 손해만 볼 뿐이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 화근이 자라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전쟁은 종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언젠가 싸울 것이라면, 미루고 미루다 불리할때 상대에게 공격당하는 것보다, 미연에 준비하고 공격하는 쪽을 택하라는 것이다. 비록 실천을 못할 지언정 선과 정의를 최고로 치는 이상과는 사뭇 다르다.






p86    남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자는 끝내 자멸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강해지는 자는 도움을 주는 자의 술책이나 무력을 통해 힘을 키우게 마련이다. 막강해진 자가 늘 술책과 무력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실제 현실에서 자주 나오는 상황이다. 마키아벨리는 수많은 역학관계의 산물인 정치가 단순하지 않음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내가 강해지는 것보다, 남을 약화시키는 것이 유용하고 또 내가 막강할때는 다른 자들의 술책과 무력이 활개칠 꺼리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나는 마키아벨리의 세계에선 궁극적 win-win이란 없다고 이해한다.





p88    자신의 영역 안에서 상위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군주는 곧 황제이다.


실로 옳은 말이다. 개인이라도 만약 자신의 신체와 재산에 대해서 단 하나의 지배권이라도 놓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자신에 대한 독재자이자 황제인 것이다.




p96    반란이 일어날 때 늘 자유와 전래의 진서가 정당화의 명분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놀라운 통찰이다. 리비우스와 헤로도토스로부터 '역사' '로마사'를 탐독한 마키아벨리의 결정체의 일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개혁, 혁명, 반란에는 자유의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이 없다. 앞으로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들이 진짜 이름처럼 자유를 목적으로 하는지는 세월이 흘러봐야 안다. 내가 볼때 자유로 시작하는 혁명 대다수는 사익으로 끝난다.





p102    새 질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현실과 타협을 한 이유가 되겠다. 현실적으로 선과 정의만 행해서는 선과 정의의 질서를 세울수가 없는 것이다. 사자와 여우같은 잔혹하면서도 교묘한 군주를 원한 이유다.






p103    무장한 예언자는 늘 승리하는데 반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늘 패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가 완전히 흡수한 역사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많이 기록되어있다. 아무리 뛰어난 통찰을 가진 현자라도 결국 선과 정의만 행해서는 무력을 가질 수 없고, 결국 무력에 의해 죽는다. 역설적이게도 선과 정의를 관철하려면 악과 불의를 뿌리로한 군대를 포기할 수 없다. 영원한 딜레마다.





p105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파멸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완벽할 정도로 통찰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시각에선 중립은 허상이다. 힘이 비슷하거나 약할때는 중립이겠지만, 언제든 힘이 강해지면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되는 것이 중립이다. 따라서 동맹이 아닌한, 거의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파멸시키는 것이 나의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는 처사인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동료가 있을때, 내 친구도 내 적도 아니라면, 언젠가 내 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내가 어떤 기회라도 준다면 그는 언제나 나에게 칼을 꼽을 수 있다.


만일 신의와 선과 정의로 그를 단지 믿고만 있다면, 패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시각이다.





p119    신생 군주국의 군주는 그의 행적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의 필요한 조치를 찾아낼 수 있다.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동맹을 확보하는 일, 무력 또는 기만술로 승리를 거두는 일,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일, 군대로부터 복종과 존경을 확보하는 일, 군주에게 해를 끼치거나 끼칠 수 있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 낡은 법제를 혁신하는 일, 엄격하면서도 친절하고 고결하면서도 관대하게 처세하는 일, 불충한 군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일, 여러 군주 및 영주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기꺼이 돕게 만들고 최소한 해를 끼칠 때도 주저하게 만드는 일 등이 그렇다. 이런 조치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체사레 보르자보다 더 생생한 사례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군주가 된다는 것은 항상 선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다. 저것은 국가를 이끄는 군주에 관해서 마키아벨리가 하는 말이지만, 현대의 개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을 때는 정의와 상식과 선에서 서로 웃지만, 상황이 안좋아져 생존경쟁을 하게되면 두려운 상대보다 선한 상대를 공격하기 쉬운것이 현실이다. 결국 무력이 바탕되지 않은 군주는 패망하듯, 실력이 바탕되지 않은 개인이 패망하는 것은 선악을 떠나서 자명하다.





p129    정복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한 뒤 자신이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가혹한 조치를 미리 계산에 넣어야만 한다. 그 경우 그런 일을 매일 반복하지 않도록 단 1번에 몰아서 해치워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앞서 언급과 같이 군주가 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면, 현실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가혹하고 악하기까지 한 일을 인정한다. 할 수 밖에 없으니 최단기간에 처리하라는 조언이다. 잘못 이해하면 악행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완전무결한 선을 주장하는 모든 이들이 걸고 넘어지는 점이다.






p129    요컨데 잔학한 조치는 반드시 일거에 시행돼야 한다. 그래야 피부로 느끼는 고통도 줄어들고, 반감과 분노도 덜해진다. 반대로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확실히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 친절과 은혜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 친절을 너무 많이 배풀면 오히려 무시당하기 쉽다.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베푸는 것이 필요한데, 오래 친절하기 위해서 덜 친절해야하는 상황이다.





p133    군주의 운에 전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처신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그것이다. 탐욕이 없고 군주에게 헌신적인 자라면 응당 예우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는 2가지 경우로 나눠 취급하면 된다. 첫째, 소심하거나 기백이 없어 충성을 표하지 않는 경우다. 이들에 대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을 경우 조언자로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번영할 때는 군주를 명예롭게 하고, 역경에 처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야심을 품고 충성을 표하지 않는 경우다. 이는 군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징표이다. 이런 자들은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마치 공개적인 적인 양 두려워 할 필요가 있다. 군주가 역경에 처하면 군주를 파멸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뛰어나나 소심하여 충성을 표하지 않는 부류의 활용이 대단히 인상깊었다. 이들은 큰 해는 없고 상황에 따라 큰 이득이 될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하라는 말이다. 가까이 둔 자보다 더 객관적인 조언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으리라.






p134    인간은 해롭게 생각된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으면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슬픈 현실이다. 백번 잘하던 사람이 한번 못하는 것은 죽을 죄이지만, 백번 못하던 사람이 한번 잘 하게되면 그것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운 일이 되는 것이다.


여러가지를 생각해보면,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하여 상대의 기대를 낮춰놓고, 필요에 따라 친절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러나 현실적인 말이다.






p137    현명한 군주라면 어떤 상황이 닥치든 백성이 나라와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평소 충성을 다하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옳다. 가장 우둔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백성이다.


나는 이 말을 개인에게 적용하고 싶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이 닥치든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믿고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평소 의도적으로라도 자기 자신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에는 자신과 작은 약속부터 큰 약속까지 맺은 후 반드시 지키며 한계를 정하기 보다, 변화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것은 마인드셋을 바꾸는 일이다.






p139    인간은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싸움의 개시를 늘 꺼리게 마련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말. 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백성의 지지를 받으면서 무력 또한 갖추었다면 상대국으로써는 전쟁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는 말이다.


개인의 입장에 적용해보면, 자기 자신을 믿으며(백성의 지지) 실력(무력)또한 갖추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적으로 만들기를 꺼릴 것이다. 오히려 가까워지려고 할 것이다.






p141    강단 있는 군주라면 백성에 재난이 곧 끝날것이라는 희망을 주거나, 적의 잔혹성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거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자의 입을 교묘히 막는 식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진실 거짓을 떠난 희망을 주는 것, 의도적으로 공포심을 자극 하는 것, 말할 자유를 막는 것. 그야말로 선의 관점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방법을 써서 자신의 나라 혹은 자기 자신을 지켜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혜롭고 명예로운 구국의 영웅이 된다.


좀 더 생각해보면, 악과 거짓과 부도덕 또한 그 안에서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살육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인지하고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최대한 적은 숫자를 죽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이다. 참 난감하다.





p141    인간은 원래 자신이 받은 수혜는 물론 자신이 베푼 시혜를 통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며 유대를 강화하는 존재이다.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통찰이다.


은혜를 베푼 대상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는 점. 즉 내가 돈을 누구에게 주면 그 대상에게 책임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가 돈을 주면서 내 어떤 책임감까지 같이 가져간 것인가? 관계가 생겼기 때문인가? 현실적이기는 하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p150    좋은 군대가 없으면 좋은 법제가 있을 수 없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 반드시 좋은 법제가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무력 없는 법은 지켜지지 않으니 좋을 수가 없고, 무력이 있는 상태에서의 법은 철저히 지켜지므로, 좋은 법의 대부분을 성취한 셈이라는 것 같다. 역시 현실적이다.





p167    자신의 무력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취약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


사실이다. 개인에게 적용되어도 마찬가지다. 운으로 얻은 모든 것은, 운이 떠나면 사라진다.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군주에게도 모든 것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만약 운이 찾아왔다면, 이를 지킬 방법을 필사적으로 익혀야하고, 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운이 찾아올때를 대비해여 역시 지킬 방법을 익혀두어야 한다. 운이 5이고 내가 5이다. 미리 나의 몫을 준비해야 내 5와 운의5가 만나 10이 되는 것이다. 준비하자.





p173    이들이 이룬 승리를 귀감으로 삼고 패배의 전철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


실로 옳은 말이다. 초월은 모방으로 부터 시작한다. 모방하면서 실패를 최소화하고 시간을 아끼며 이전의 탁월함을 완전 흡수 한 다음, 그 다음에야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되고 초월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명저를 읽는 것은 그야말로 그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일 것이다.

100억이 생긴다 한들, 4대성인이나 카이사르, 데카르트, 스피노자, 루소의 삶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인가? 돈은 돈이지만, 글은 사람이자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책을 읽는 일보다 값진 일은 정말 드물다 하겠다. 이기적이고 똑똑할 수록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합리적이다.






p174    현명한 군주라면 늘 이같이 행동해야 한다. 평시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불의의 역경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설령 운명의 여신이 변심할지라도 능히 이에 맞설 수 있다.


삶의 지침으로 삼을만 하다. 운에 기대기 보다 자신의 노력이 기대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이라는 점, 사실은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p176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시의에 따라 때로는 악하게 굴거나 악행을 저지르거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군주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문장이 아닐까.


반대로 보자면, 악과 악행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싶다면, 군주가 되길 포기해야 한다. 촌부로 살면 군주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군주와 같은 사람 사이에서 큰 자가 되려면, 그만큼 악에 가까워 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p178    주의할 점은 악행 없이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악행으로 인한 오명도 크게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항을 잘 고려할 경우 뛰어난 자질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게 오히려 파멸을 초래할 수 있고, 반대로 악한 성향으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게 오히려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뇌에 빠지게 하는 문장들이다. 맞는 말이다. 세상을 겪어볼 수록 맞는 말이 된다.


군주에게 권력,무력은 생명이므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악행을 행해야 할 때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때로 악행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오명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선한 일만 하는 것은 오히려 파멸이 될 수 있고, 악행이 번영을 가져올 수 있으니 시의를 판단할 날카로운 눈을 길러야 한다는 말 같다. 악한 일을 해야 할 때가 오면, 고뇌를 떨치고 악행을 하고 자신을 보존하라는 조언이다. 어렵다.





p180    무릇 군주는 스스로 해를 초래하지 않는 한 관대한 자질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칭송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현명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다. 군주는 절약을 통해 재정을 튼튼히 해야 한다. 그래야 적의 공격을 막거나 원정에 나설 때 백성들에게 전비 부담을 주지 않고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백성들은 군주의 검약을 오히려 매우 관대한 행보로 칭송할 것이다. 자신들의 재산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뭔가를 기대한 소수의 사람들만 인색하다고 비난할 뿐이다.


사회의 기본적인 정의관에 반대되지만, 감히 반박을 할 수가 없다. 백성들이 인색하다 욕하다가도 전쟁의 승리와 같은 결과물이 잘 나오는 상황에선 오히려 그 점이 칭찬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스스로의 기력(정신력+체력)을 엄밀하게 아껴야 한다는 점일까? 그래야만 어떤 어려운 일을 하고 도전을 벌이더라도 자신의 기력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큰 피해 없이 결과물을 얻게 되므로, 당연히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지지는 더 높아지게 될 것이고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만일 스스로의 기력을 선하다 여겨지는 일들에 소비하다가 갑작스런 도전에 부딪혀 기력이 파탄나는 상황이 온다면... 스스로 완전히 무너지고 자존감도 떨어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떠나가게 된다. 참 현실적이다.






p183    관대만큼 스스로를 빨리 소진시키는 게 없다. 이를 고집스럽게 행하면 이내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경우 크게 빈곤해져 경멸을 받든가, 빈곤의 탈출 과정에서 탐욕스런 모습을 보여 증오를 사게 된다. 무릇 군주는 남에게 경멸을 받거나 증오를 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결멸과 증오 모두 관대에서 비롯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인색하다는 악평을 견디는 게 더 낫다. 비난은 받되 증오는 사지 않기 때문이다. 관대하다는 호평은 끝내 빈곤에 따른 경멸과 증오의 배경인 탐욕을 낳는다.


역시 또 다른 딜레마를 건내준다. 관대하다 보면 관대하지 못하게 된다. 관대하고 싶다면 인색해야 한다.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내 결론은 때로 관대하게, 때로 인색하게 하는 방법 뿐이다. 그 기준은 자신의 기력에 달렸다. 군주라면 자신의 무력과 재력에 달렸다. 무력이 충분히 넘친다면 관대할 수 있고, 관대 해도 좋다. 하지만 최고는 관대한 척 하는 것이다. 이는 관대한 척 하는데는 큰 비용이 들지 않고 명성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적용해보면, 기력이 넘친다면 관대할 수 있고, 관대 해도 좋다. 하지만 최고의 이득은 최소한의 기력으로 관대한 척 관리하는 것이다. 참...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사실이다.


나는 그 중간에서 자리하겠다. 최대한 관대하되, 스스로 힘들어지고 한계에 부딪히면 회복할 때 까지, 인색하겠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결국 내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도 큰 피해다. 모든 사람처럼 나도 한계가 있고, 계속 관대하다 무너지는 것 보다 필요할때마다 인색한 편이 훨씬 낫다.






(중략...) 너무 길어서 한번에 쓸 수가 없다.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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