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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자유, 평등, 책임 그리고 안티프래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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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와 평등, 원인, 결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시간이 충분히 흘렀고, 새로운 것들을 배운 나는 다른 측면을 생각을 한다.


 



종전 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책임이 각각 서로의 그림자로써
서로 동등한 크기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편이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현실에서는 무한한 자유와 제한된 책임이 있을 수 있다.
(비양심적인 강자들. 독재자, 성과에 상관없이 엄청 챙겨가는 CEO, 분석에 책임지지 않는 애널리스트, 실행하지 않는 컨설턴트 등...)

반대로 제한된 자유와 무한한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보험사, 보증, 옵션, 단기적으로도 전혀 손해보지 않으려는 행동 등)



작은 선행을 예를 들어보자.

작은 선행은 각 주체의 기준으로 수용할만한 제한된 비용이 들어간다.

행동하기 전에 비용 수준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자기 양심속에서는 이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행들이 쌓이게 되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순간 놀라운 일들로 벌어질 수 있다.

우연히 도와준 사람이 입사할 회사의 면접관이라든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어디선가 계속 벌어지는 일들이다.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어떤 일의 결과가 돌고 돌아 내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드물게나마 알 수 있다.




몇 달 전 회사에 입사가 예정되었던 사람이 입사가 취소된 적이 있다.

해당 사람에게는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전달되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의 중학교 동창이 있었던 것이다.

동창은 그 친구가 폭력적이고 비협조적이고 금전적으로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선형적인 사고를 하고 인식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때문에 원인과 결과에 대해 명백하게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우리가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에 더더욱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압도적인 복잡함 앞에 눈뜬장님처럼 코끼리를 만져가면서 확신하고 좌 절하 고를 반복하고 있다.




수많은 선행들 중 하나에 우연히 큰 보상이 생기기도 한다.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의 개념으로 정의 블랙스완이 출현한 것이다.

반직관적으로 모든 비용의 선형적인 합을 완전히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결과가 단 한순간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선행은 안티프래질하다.



반대로 살펴보자.



큰 손해 없이 남을 도울 수 있음에도 않음은 프래질 하다.

이득은 너무 뻔하다.

1분. 2분. 몇 칼로리. 약간의 신경.

이걸로 끝이다.



하지만 손해는 심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평소처럼, 지금 여유가 조금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작은 선행을 베풀지 않았다고 해보자.



언젠가 우연이 그를 덮칠 것이다. 문제는 언제 덮치느냐, 어떤 규모로 덮치느냐이다.

그것이 명백한 인과의 형태를 띌수도 있고, 복잡한 관계를 거칠 수도 있지다.

확실히 그는 프래질한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프래질한 사람은 모든 것을 계획과 이론 안에 둘 수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더 효율적일수록 더 프래질해지며, 더 커질수록 더 프래질 해지고, 지위가 더 높아질수록 더 프래질 해진다.

그러다 블랙스완 앞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말한다.

"계획의 이 부분이 문제였어. 내가 이 요소를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는 제한된 손실과 열린 이득을 특성으로 가지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 망한 이유임을 모른다.

그는 불확실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또 효율적인 계획과 맥락없는 개입을 할 것이며, 망할 것이다.




교훈은 한가지다.



안티프래질 한 행동은 계속해라.

비용은 적지만 잠재적 이득이 큰 행동은 계속해라.

저축하기, 위험부담이 작은 도전하기, 새로운 것 배우기, 작은 선행, 인사, 책 읽기, 새로운 파티에 가기, 너무 빡빡하지 않게 일정 짜기, 산책하기,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기 등...




자유와 평등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옳고 그름은 뒤로 물러난다.



진짜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즉 진짜 자기 이득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면
전혀 손해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 하다가 블랙스완에 한방에 무너지는 것보다
잠재 이득은 크고 손실은 제한된 행동을 하는 게 확실히 더 좋은 게 아닌가?



반대로
도울수 있음에도 남을 돕지 않음으로써 그 자신이 프래질 해지고
결국 그 대가로 무너지며
경쟁자와 해당 분야에 안티프래질을 선사해주는 것이
얼마나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인가?


작은 선행도 하지 않는 프래질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프래질한 그들의 희생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안티프래질 한 삶을 살게 되니까...


 


by 피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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