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work) 관점 서평 :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nuity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반응형

https://hong30.tistory.com/184

 

 



■■■ 한줄평

 

시대 단절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명확하게 포착하다.




■■■ 평점

 

9.9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피터 드러커에 대한 책 약 40여 권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피터 드러커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습득하던 중, 그의 저작 가운데서도 명저로 꼽힌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소개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Next Society> <21세기 리더의 선택>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실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자서전> 등이 있다.





 

 

 

피터 드러커의 책 서평들




2019/12/29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피터 드러커 자서전 Adventures of a Bystander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일(work) 관점 서평 : 피터 드러커 자서전 Adventures of a Bystander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https://hong30.tistory.com/182 ■■■ 한줄평 피터 드러커라는 위대한 시대관찰자의 모험. ■■■ 평점 9.9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피터 드러커에 대한 책 약 40여권을 미리 구매해두었다. 그..

hong30.tistory.com

 

 

 

2019/12/2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https://hong30.tistory.com/180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 한줄평 기업가 정신에 대한 통념을 부수고 체계화하다. ■■■ 평점 9.8 / 10 ■■■..

hong30.tistory.com

 

 

 

2019/12/15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https://hong30.tistory.com/179 ■■■ 한줄평 경영을 넘어서는, 전무후무한 역작. ■■■ 평점 10.3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나는 작가 피터 드러커의 책인 자기 경영노트, 기업가정신, 넥스트..

hong30.tistory.com

 

 

 

2019/12/01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https://hong30.tistory.com/174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 한줄평 인간 피터 드러커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책. ■■■ 평점 9.7 / 10 ■■■..

hong30.tistory.com

 

 

 

2019/11/1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 - 피터 드러커

 

일(work) 관점 서평 :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 - 피터 드러커

https://hong30.tistory.com/153 ■■■ 한줄평 충분히 증명된 미래사회의 초상화. ■■■ 평점 9.6 / 10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냥 피터 드러커에 매료되었다. 자기 경영 노트..

hong30.tistory.com

 

 

 

2019/10/26 - [2. 일 & 책] - 일(work) 관점 서평 : 자기 경영 노트 - 피터 드러커

 

일(work) 관점 서평 : 자기 경영 노트 - 피터 드러커

■■■한줄평 현대적 생산성의 최전방을 정립한 책. ■■■평점 10 / 10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 나의 경우 경영, 업무, 생산성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피터 드러커였다. 따라..

hong30.tistory.com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더보기


https://hong30.tistory.com/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https://hong30.tistory.com/ . . . .


https://hong30.tistory.com/

  년도 나이 월일 드러커 연보
드러커 저작(한국 출판명) 1909 . 11월 19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대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남.
정부의 요직에 있던 아버지 아돌프는 1876년생으로 33세,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의학을 전공한 어머니 캐롤라인은 1885년생으로 24세
. 1911 1~2세 - 동생 게르하르트 태어남
. 1913 3~4세 -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래가 되었으며 95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획적이며 집중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유지했음.
. 1914 4~5세 6월 일가족이 함께 아드리해를 여행하던 중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 소식을 들음.
아버지 아돌프는 빈으로 호출되어 전쟁 방지를 위해 측근을 통해 황자에게 직소함.
. . .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돌프는 전시경제를 지휘하는 정부고관 세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공업생산을 담당함.
. 1915 5~6세 9월 빈 시내에 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교사인 미스 엘자와 미스 조피(소피) 두 사람을 만나게 됨.
. . 5~6세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 1919 9~10세 - 글씨 이외에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어 5년간 다녀야할 초등학교를 월반하여 4년만에 마침.
. . . 9월 라틴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진학 예비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함.
28명의 학생 중 최연소로 1학년이 됨.
. . . - 부모님이 매주 집에서 개최한 정치가, 은행가, 지식인이 참가하는 파티에 얼굴을 내밀게 됨.
. 1920 10~11세 - 아버지 아돌프가 잘츠부르크음악제를 공동으로 창설하여 회장에 취임함.
. 1923 13~14세 11월 19일 사회주의자가 지배하는 빈 시민이 매년 축일로 삼는 '공화국의 날' 데모 행진에 참가하여 붉은 깃발 대열의 선두에 섬.
. . . -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잡지인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를 읽기 시작함.
. 1925 15~16세 - 부모님의 친구가 주최하고 저명인사들이 출입하는 살롱에도 출입하게 되었으며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작가인 토마스 만을 만남.
. 1927 17~18세 - 김나지움 졸엄.
함부르크에서 무역상사 견습사원이 됨.
. . . 9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
. . . - 대학 입학을 위한 논문 <세계 무역에 있어서 파나마운하의 역할>이 독일의 경제 계간지에 실림.
. . . -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편집회의에 초빙되어 부편집장인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 매료됨.
. 1929 19~20세 1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인 프랑크프루트로 이사함.
그곳에서 미국계 투자 은행의 증권분석가로 취직하여 최초로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 법학부에 편입함.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함.
. . . - 독일의 경제 계간지 9월호에 계량경제학적인 논문을 두 가지 발표.
. . .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암흑의 목요일'을 맞게 됨.
. . . 10월 25일 암흑의 목요일'에 관해 쓴 기사가 프랑크프루트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 석간 신문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에 게제됨.
신문기사로서는 처녀작임.
. . . - 연말까지 암흑의 목요일의 영향으로 미국게 투자은행이 파산하여 실직.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기자로 곧 취직함.
. 1930 20~21세 1월 2일 석간 신문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로 첫 출근함.
. 1931 21~22세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국제법박사 학위를 취득함.
. . . - 장래의 아내인 도리스를 알게 됨.
. . . - <프랑크프루트 게네럴 안차이거> 세 명의 부편집장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됨.
부편집장으로 매주 몇 편의 논설을 쓰는 한편 해외면이나 경제면의 편집도 담당함.
동료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는 여성면의 편집도 담당함.
. 1932 22~23세 - 아돌프 히틀러나 요제프 괴벨스 등을 단독 취대함.
. . . -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조교에서 강사로 승진을 타진받음.
. . . - 쾰른의 명문 신문인 <쾰르니쉐 차이퉁>으로부터 해외뉴스 전반의 편집책임자 자리를 타진받음.
쾰른 대학의 강사자리를 제안 받음.
둘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
(한국출판x) 프리드리히 슈탈 : 보수주의적 정치이론과 역사적 전개. 1933 23~24세 1월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 후 독일 탈출을 계획함.
그 무렵 저널리스트로서 자리잡기 위해 유대계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슈탈에 관한 책을 집필, 독일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인 모아Mohr에 보냄.
. . . 2월 하순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나치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소집한 교직원 회의에 최초로 출석함.
. . . 4월 런던으로 이주.
보험회사의 증권분석 일을 얻게 됨.
. 1934 24~25세 - 영국 투자은행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됨.
. . . -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강의를 청강하기 시작함.
. . . - 외국 은행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되는 클럽에 가입.
. . . - 영국 최초의 일본회화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일본화에 매료됨.
. 1935 25~26세 - 런던에서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와의 교제를 돈독히 함.
. . . - 미국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함.
(한국출판x) 독일의 유대인 문제 1936 26~27세 - 빈의 출판사를 통하여 독일시대의 체험을 살린 <독일의 유대인문제>를 독일어로 출판.
훗날 <경제인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
경제인의 종말 . . -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우 게르하르트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기 시작함.
. 1937 27~28세 1월 도리스 슈미트와 결혼.
. . . 2~3월 호화여객선으로 지중해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수주일간의 신혼여행.
베니스나 그리스, 시칠리아 섬, 알제리아, 리스본 등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대서양 한복판에 떠 있는 아조레스 섬에 들림.
. . . 4월 하순 뉴욕에 도착.
뉴욕 교외의 아파트를 빌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함.
. . . - <파이낸셜 뉴스>(현재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의 영국신문사 미국특파원으로서 출발함.
. . . - 도리스도 영국 대형소매회사의 뉴욕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함.
. 1938 28~29세 3월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
유럽으로 출장하여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유럽 정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기고함.
. . . - 미국 중서부로 출장했을 때 지역 유력 신문의 1면 기사로 소개됨.
'미국에 관해 영국 신문에 기고하는 미국 주제 특파원'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임.
드러커를 소개한 기자는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를 수상한 사람이었음.
. . . -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경제인의 종말>을 탈고, 뉴욕의 출판사인 존 데이와 출판계약함.
. . . - <경제인의 종말>의 출판이 결정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기사를 선전하여 기사를 쓰도록 권유받음.
. . . -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함.
아버지 아돌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에서 국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함.
. . . - 장녀 캐슬린이 태어남.
. 1939 29~30세 연초 취재를 위해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조지아 등 미국 남부를 방문.
. . . 4월 처녀작인 <경제인의 종말> 출간.
나치스 독일은 유대인의 말살에 나서는 동시에 소련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
. . . 5월 영국 수상이 되기 전의 윈스턴 처칠이 <경제인의 종말>을 영국 고급 잡지인 <런던 타임스>의 서평에서 높게 평가함.
그 영향으로 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필가로서 경력의 토대가 됨.
. . . 8월 <경제인의 종말>에서의 예상대로 나치스와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세계를 놀라게함.
일주일 후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
. . . - 잡지왕인 헨리 루스로부터 주간지 <타임>의 편집자 자리를 제안받음.
. . . - 뉴욕 근교의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취임.
경제학과 통계학을 주 1회 가르침.
. 1940 30~31세 - 잡지왕 헨리 루스가 창간한 경제지인 <포춘>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편집에 참가.
. . . - 경제지 <포춘>의 편집을 하고 있던 시기, 편집부 내에서 후일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우는 천재건축가인 백민스터 프러를 만남.
. . . - 학회 모임에서 후일 <미디어의 이해> 등을 발표 일세를 풍미한 캐나다의 저명한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과 알게 됨.
. . . - 유력지인 <하퍼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4반세기에 걸쳐 정치나 경제, 국제 문제 등을 폭넓은 주제에 관하여 1년에 6~8편의 기사를 씀.
. 1941 31~32세 - 베닝턴 대학으로부터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학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를 소개함.
. . . - 부모님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 관세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함.
. . . 가을 장남인 빈센트가 태어남.
. . .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함.
이를 계기로 워싱턴에서 불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됨.
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1942 32~33세 - 워싱턴을 떠나 육군성 컨설턴트로서 디트로이트 등 중서부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영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후일 품질관리의 권위자가 되는 에드워드 데밍을 스카우트함.
. . . 여름 뉴욕에서 버몬트로 이사하고 여자대학인 베닝턴 대학의 교수에 취임.
정치나 경제, 역사, 철학 등 폭넓은 주제를 취급함.
. . . - 아내 도리스는 베닝턴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연구를 시작함.
. . . - 나치스 독일의 패배를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산업사회를 그린 두 번째 저작 <산업인의 미래>를 출간.
. 1943 33~34세 - <산업인의 미래>를 읽은 GM의 부회장으로부터 GM의 경영 방침이나 구조에 관해 조사하도록 의뢰받음.
GM의 조사 의뢰를 쾌히 승락함.
. . - 미국시민권을 취득함.
. 1944 34~35세 - GM의 주요 간부를 대부분 인터뷰하는 것 외에 주요 공장도 방문.
'미스터 GM'인 앨프래드 슬론을 만남으로써 '경영의 프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귀중한 발견을 함.
. 1945 35~36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육군성의 컨설턴트 일도 끝남.
. . . - 18개월간의 GM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3부작 <기업의 개념>을 탈고함.
기업의 개념 1946 36~37세 - <기업의 개념> 출간.
GM식 분권제 등을 제창한 이 책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
GM의 경영진으로부터는 '좌익의 공격'이라고 통열한 비판을 받음.
. . . - 부모님이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이사함.
아버지 아돌프는 70세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함.
. 1947 37~38세 - GM에서 미국 산업 역사상 최초가 될 대규모 종업원 의식조사를 실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품질관리의 도입을 시도하지만 전미자동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서 좌절함.
. . . - 미 국무장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유럽부흥 계획)'의 실시를 지도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시찰.
물자조달을 담당하면서 군인 출신인 마셜의 지도력을 보게 됨.
. . . - <하퍼스 매거진>에 '핸리 포드의 성공과 실패'를 기고함.
. 1948 38~39세 -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으로부터 학부장 자리를 제안받음.
아직 흑인 차별이 있던 남부로 이주하는 것을 주저하여 거절함.
. . . - 빈 시대의 지인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부 장관이던 얀 마시리크가 자택 앞에서 시체로 발견됨.
. 1949 39~40세 - 뉴욕으로 이사하여 뉴욕 대학의 교수로 취임.(~1970까지 경영학부 교수 역임)
동대학 대학원에 매니지먼트 학과를 창설.
뉴 소사이어티 NEW SOCIETY 1950 40~41세 1월 아버지 아돌프와 하버드대학을 은퇴하려고 했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방문.
그로부터 1주일 후 슘페터는 숨을 거둠.
. . . 2월 <하퍼스 매거진>에 '연금의 신기루' 기고.
. . . 10월 GM의 최고경영책임자, 찰스 윌슨과 협력하여 GM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기업연금제도를 창설함.
. . . - GE의 컨설턴트가 됨.
. . . - 근대적인 경영컨설턴트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마빈 바우어로부터 맥킨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지만 거절함.
그래도 바우어와 함께 많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경영컨설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 . . - <새로운 사회> 출간.
. 1951 41~42세 - 매니지먼트 연수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미국경영협회와 접점을 갖기 시작함.
창설자인 앨빈 댓과 만남.
. . . - 매니지먼트 분야의 선구자인 여성철학자, 메리 파커 풀렛의 존재를 알게됨.
. 1953 43~44세 -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모리타를 뉴욕에서 만남.
. . . - 1947년에 GM이 실시한 대규모의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도요타자동차에 가져감.
. . . - GM의 회장인 엘프레드 슬론으로부터 MIT의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함.
경영의 실제 1954 44~45세 11월 다섯 번째 저작 <경영의 실제> 출간.
GE등 대기업에서의 컨설턴트 경험을 살려서 최초로 매니지먼트를 하나의 기능으로서 파악하여 체계화하는데 성공함.
이를 통해 '매니지먼트의 발명자'로 일컬어지게 됨.
. . . - 어머니 캐롤라인이 60대 후반으로 별세.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시점에 이미 병약했다. 
어머니에게 미국은 줄곧 외국이었으며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끝까지 익숙치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 . . . .
. . . . .
(한국출판x) 미국의 다음 20년 1955 45~46세 - <미국의 다음 20년> 출간.
. 1956 46~47세 - 민주화의 움직임에서 소련의 군사개입을 초래한 헝가리동란이 발생함.
국제구조위원의 지원자로서 헝가리 난민 인드류 그로브를 도움.
그로브는 후일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업에 가담함.
(한국출판x) 내일의 이정표 1959 49~50세 7월 일본사무능률협회(현 일본경영협회)의 초대로 하코네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반을 방문.
. . . - <내일의 이정표> 출간
. 1960 50~51세 -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방일.
. 1961 51~52세 - 허둥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 . . - <GM과 함께한 나날들>에 관한 서평을 씀.
. 1963 53~54세 - 일본은 두 번째 기적을 지향한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관해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함.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 이재규
(불확실함.) 성과를 향한 도전 / 간디서원
1964 54~55세 - <결과를 위한 경영> 출간
피터 드러커 자기경영노트 1966 56~57세 6월 산업경영의 근대화와 일미친선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훈 3등서옥장을 수여받음.
. . . -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출간.
. 1967 57~58세 - 아버지 아돌프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함.
드러커는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국에 곧 적응해서 대학에서도 일했다.
아주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함.
단절의 시대 1969 59~60세 - <단절의 시대> 출간.
이 책에서 '민영화'라는 조어가 등장함.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리처드 닉슨은 <단절의 시대>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드러커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수행과 통화의 증발일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연설중 발언함.
(한국출판x)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 . . . .
인간과 시스템의 경영 1970 60~61세 - 영국 보수당은 드러커의 저작에서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당의 기본 정책에 '민영화'를 도입함.
후일 대처 정권 하에서 수많은 국영사업을 민영화하는 형태로 실행하게 됨.
일과 기술의 경영 . . . .
. . . . .
. . . . .
(한국출판x) 새로운 시장과 에세이 1971 61~62세 -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 전문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 '일본식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발표함.
. . . - 뉴욕에서 남캘리포니아주로 이주.
피터 드러커 - 매니지먼트 / 남상진 1973 63~64세 - <매니지먼트 출간>.
그때까지의 매니지먼트 연구를 집대성한 대저작.
경영대학원의 교과서로서 정평이 나있음.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세트 / 이재규 . . . .
. 1975 65~66세 - 미국 최대의 경제 전문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하기 시작함.
이후 20년에 걸쳐 이 잡지의 경영과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함.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 1976 66~67세 - <보이지 않는 혁명 출간.
GM의 컨설턴트로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그 당시 예상한 대로 '연기금사회주의'가 미국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나타냄.
피터 드러커 리더의 도전 1977 66~67세 . .
(한국출판x) 매니지먼트 입문적 관점 . . . .
(한국출판x) 사람과 성과 :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논문선집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1979 69~70세 - <방관자의 시대> 출간.
1940년대까지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쓴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이색적인 저작.
. . .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동양미술 강사에 취임함.
이후 일본 회화에 관해 5년간 가르침.
혼란기의 경영 1980 70~71세 - <격변기의 경영> 출간.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1981 71~72세 -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출간.
. . . -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의 컨설턴트를 맡게 됨.
이후 5년간 '웰치혁명'의 방향 설정자로 활약하고 '시장점유율이 1위 혹은 2위 이외의 사업에서는 손을 뗀다'는 경영 방침을 만들어냄.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1982 72~73세 - 최초의 소설 <가능한 세계들의 최후> 출간.
. . . - <변모하는 경영자의 세계> 출간.
(한국출판x) (소설)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 . . .
. 1983 73~74세 -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두 사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포춘>에 '슘페터와 케인스'를 기고함.
(한국출판x) (소설) 선행으로부터의 유혹 1984 74~75세 - 두 번째 소설 <선에의 유혹> 출간.
기업가 정신 1985 75~76세 - <혁신과 기업가정신> 출간.
프런티어의 조건 1986 76~77세 - 9월부터 이듬해에 걸쳐 동경, 오사카, 나고야에서 '수묵명화작전'을 개최함.
직접 수집한 일본화 컬랙센열 공개함.
. . . - <경영의 최전선> 출간.
(한국출판x) 새로운 현실 1989 79~80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의 개념을 보임.
'이 잡지에 기고한 기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사일지 모르겠다'고 회고함.
. . . - 소련의 붕괴 등을 예상한 <새로운 현실> 출간.
비영리단체의 경영 1990 80~81세 - <GM과 함께한 나날들>의 재판 서문을 씀.
. . . - 오랜 비영리단체NPO 분야에서의 컨설팅 경험 등을 살려 <비영리단체의 경영> 출간.
(한국출판x)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속에 나타난 드러커 1991 82~83세 - <월스트리트 저널>에 '빅3는 일본의 중대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를 기고.
(한국출판x) 우리들의 변모하는 경제사회 . . . .
(한국출판x) 미래 기업 1992 83~84세 - <미래 기업> 출간.
(한국출판x) 생태학적 비전 1993 83~84세 - 국제 문제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에 '일본주식회사는 끝인가?'를 기고함.
. . . -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을 설파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간행.
. . . - 과거의 저작활동 중에 쓴 기사나 논문을 뽑아 정리한 <생태학적 비전> 출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 . . .
대변화 시대의 경영 1995 85~86세 - 스스로 높이 평가하는 메리 파커 풀렛의 저작을 모은 <메리 파커 폴렛 관리의 예언자>의 서문을 집필.
. . . - <미래의 결단> 출간.
(한국출판x) 보이지 않는 혁명(개정판) 1996 86~87세 -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을 <연금기금혁명>으로 재출간.
. . . - 열일곱 번째 방일. '격변기의 경영'을 주제로 강연함.
(한국출판x) 드러커 온 아시아 1997 87~88세 3월 <포춘> 표지를 장식. 타이틀은 '지금도 마음은 가장 젊다.'
. . . 가을 국제 문제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논문 <세계경제와 국민국가>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
. . . - <드러커 온 아시아> 출간.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경영자 1998 88~89세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한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출간.
21세기 지식경영 1999 89~90세 - 비즈니스의 전체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 <21세기 지식경영> 출간.
드러커 3부작 - 프로페셔널의조건 2001 91~92세 - 드러커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과거의 저작들로부터 주요 부분을 추출하여 에센셜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출간.
드러커 3부작 - 변화 리더의 조건 . . . .
드러커 3부작 - 이노베이터의 조건 . . . .
넥스트 소사이어티 2002 92~93세 7월 9일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메달'을 수상함.
. . . 12월 24일 미국방송사인 CNB가 제작한 1시간 다큐멘터리방송 '피터드러커 지적거인'이 방영됨.
경영의 지배 2003 92~93세 . .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2004 94~95세 - 과거의 저작을 토대로 366개의 읽기 쉽게 편집한 <데일리 드러커> 출간.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2005 95세. 별세.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출간
. . . - 기술계의 독자를 위한 경영서 <테크놀로지스트의 조건> 출간.
출처 . . . .
나의 이력서 / 남상진 . . . .
매니지먼트 / 남상진 . . .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이동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https://hong30.tistory.com/ . . . .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더보기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기관.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02. 매니저 

  크든 작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03. 탑매니지먼트 

  조직의 최고경영자로, 지식의 적용과 조직의 최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 



04. 지식근로자 - knowledge worker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함. 

  육체근로자와 대비되는 개념.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이로써 기업에 공헌하는 근로자.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06. 조직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실체.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기관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07. 민영화 Privatization -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만들고 사용함 

   단절의 시대(1967) 



08. 아웃소싱 개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기사 ‘우편과를 팔라!’로 세계 최초의 아웃소싱 개념을 선보임. 



09.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 

  GM에서 최초의 근대적 연금제도의 창설에 일조함. 

   보이지 않는 혁명(1976) 

 

 


10.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 

  천재적 인물에 의존하는 갑작스러운 것에서, 체계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통상 기술적 이노베이션보다 경제적 이노베이션, 사회적 이노베이션이 훨씬 파급력이 크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3가지 이노베이션을 구별함.

 

  

 

 

 

 

 

 

 







■■■ 저자에 대한 생각

 

 

피터 드러커는 선구자다.

 

 

 

실제 현상이 시작된 것을 가장 먼저 인식한 후 다룰만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단어와 개념을 만들었다.

 

 

지식근로자, 경영 등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는 또한 겸손하다.

 

 

그는 자신이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였음을 알아채고 그에 관해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어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 매우 엄격했다.

 

너무 심하게 단순화시켜 단정함으로써 자극적으로 만드는 유혹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검증하여 거의 명백하게 밝혀진 부분과 예상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직하게 서술하였다.



 

특히 이 책, 단절의 시대에서는 시대적 단절이 가져올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고 또 인구변화나 가치관의 변화 같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한편, 미래는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았고 개인과 기업의 목표달성, 더 높은 차원에서는 개개 인성이 존중되면서도 번영할 수 있는 사회에 필요한 도구들과 변화에 대해 질문하였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방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 달리 오래 살게 된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교육기간은 계속 길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필수적이라는 근거가 없는 일이다.




■■■■■■ 본문 1



현대는 육체작업에서 지식 작업으로 중심이동을 했다.



그러나 지식작업은 계량적으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계량화(quantification)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한 조직에 기여할 수 있고 솜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식근로자를 관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방법과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지식근로자가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식작업의 동기부여는 지식근로자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와야만 한다.

 

전통적인 ‘동기요인들(motivators)’, 즉 외부적 보상들(예컨대 임금)은 지식근로자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

 

임금과 같은 외부적 보상에 대한 불만족은 동기부여를 해치고, 그런 것에 대한 만족은 그냥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달리 말하면 외적 보상과 같은 동기요인들이 없으면 성과향상을 가로막지만, 그런 요인이 있다 해도 성과는 오르거나 내리지 않는 채 중립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프레더릭 허츠버그 2팩터 이론)





■■■홍트리버 생각

 

거의 모든 산업이나 조직은 육체노동에서 지식 작업으로 업무의 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일을 잘 못하고 있다.



드러커에 의하면 육체 작업에 한정해 말하더라도 프레더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를 도입하기 전 까지 생산성 향상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과학적 관리를(지식) 육체 작업에 도입하자, 생산성이 급격하게 향상되었고 향상된 생산성은 사회변화를 강제했다.




테일러 이후 육체작업이 아니라 지식 작업이 생산성의 핵심이 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육체작업에 대한 확실한 변화조차 수천 년 이상이 걸렸는데, 보이지 않는 지식 작업을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드러커는 계량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도, 지식작업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야 말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정말로 모두가 어느정도 수용할만한 측정 기준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일의 관점

 

 

그렇다면 드러커가 제시한 지식작업의 측정 기준은 무엇인가?

 

드러커는 말한다.



“올바른 측정 기준을 설정하려면, 먼저 당신의 사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



그렇다.



더골1의 엘리 골드렛도 그렇고, 피터 드러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목표나 목적에 대한 확실한 정의 없이 생산성, 효율,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다.



 

높은 매출이 목표라고 설정해보자.

 

당신은 매출 100만원 / 순이익 20만원 보다 매출 1000만원 / 순이익 10만원 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순이익이 없어도 매출만 높으면 좋은가?



 

 

시장 점유율은 어떤가?

 

너무 높은 시장점유율을 달성하고 그것에 집중한 나머지 여론의 질타를 받아 법의 제약을 받거나 국유화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통신사업 등 공공재 분야가 그렇다.



 

 

결국 하나의 정답은 없다.



영리기업의 목표는 수익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지만, 그것도 외부 환경, 문화, 기업의 분야와 성장 시기에서의 위치,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 핵심적인 기준은 우리의 어떻게 고객에게 어떤 경제적 만족 또는 구체적 기여를 하느냐이다.

 

 

결국 모든 기업은 고객이 외면하면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로 인간을 묶어둘 수 있을지 몰라도, 잠재력을 발휘하게 할수는 없다.



■■■■■■ 본문 2





지식근로자는 육체노동자보다도 매우 많은 보수를 받고 있으며, 직업 안정성도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지식은 미국 경제에 있어 이미 중요한 원가요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식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은 생산성, 경쟁력, 그리고 경재성장에 핵심이 된 지 오래다.









■■■홍트리버 생각



피터 드러커가 뛰어난 점 중 하나는 지식을 원가가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피터 드러커는는 사람도 생산요소 중 가장 중요한 지식을 그 자체에 보유하고 높은 이동성을 가진 자산으로 다루기도 한다.

 

이는 드러커의 주장을 들어보면 명백하다.



 

평범하고 노동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작업 방법 즉 지식을 전수하면 수개월 내에 아주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 사람을 탁월한 성과를 내도록 만든 요인은 지식이다.

 

따라서 지식은 생산성 향상의 핵심 요소이며, 자산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



 

 

전통적인 생산요소는 노동과 자본, 토지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 있다면 그것들은 언제든지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은 다르다.

 

따라서 아무리 노동, 자본, 토지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대상, 즉 사람을 하인 부리듯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일류 기업들은, 최고로 희소하면서 동시에 높은 이동성을 보유한 자원, 즉 인재를 유도하고 보유하기 위해 다양한 동기부여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의 관점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업의 생산성, 궁극적으로 기업의 생존은 인재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인식 수준에 달려있다.




인재를 비용으로만 생각하면 쥐어 짜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인재를 가장 희소한 생산요소로 생각하게 되면 행동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인재는 의식적으로 가꾸어 지고, 개발되어야 하고, 확장되어야 한다.

 

인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업가적 인재는 지식근로자를 개발하고 존중하는 환경에서만 배양된다.

 

 

 

즉 스스로 판단할 줄 알고 책임지고 높은 기준을 달성하려는 의욕을 불태우고, 변화를 기회로 인식하며, 체계적인 폐기를 할 줄 아는 인재는 가장 낮은 직급에서부터 단련되지 않으면 검증될 수 없거나 검증하기 위해 치명적인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도 스스로 능력의 한계가 온다.

 

경영자팀이 필요한 바로 그때 이미 수년간 검증된 경영자 팀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경영자로서 실패한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주장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더불어 브리지워터를 40년넘게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레이 달리오조차 스스로 조직 구조의 결함 즉 경영 승계에 대한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핵심 인물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자연스럽게 경영 능력을 검증되도록 조직과 직무를 구성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중요한 일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지식근로자는 종업원이지만 부하는 아니고 또 상사를 모시는 존재다.

 

 

지식근로자는 스스로를 전문가로 인식하지만, 현실 대우는 스태프 수준이다.

 

 

만약 지식근로자가 자신이 겨우 스태프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하면, 의욕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변화는 멈출 수 없으며, 지식근로자를 잘 관리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 본문 3



지식근로자의 전통과 종업원으로서의 그의 지위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야기한다.

 

 

 

비록 지식근로자는 ‘노무자’는 아니지만, 그리고 분명 ‘프롤레타리아’도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의 ‘종업원’이다.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받는 사람을 부하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 있어서 그는 ‘부하’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적용하고, 자신의 판단력을 활용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때문에 급료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상사’를 모시고 있다.



지식 근로자는 자신을 ‘전문가’로 인식하는 반면, 사회적 현실은 그를 과거의 숙련 근로자로부터 단지 지위가 향상되고 또 봉급을 많이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잠재적 갈등이 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이유다.

 

그들은 ‘지식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스태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지식 일자리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 그들이 처한 실제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은 해가 감에 따라 점점 더 날카롭고 분명해질 것이다.

 

그것은 지식근로자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것이 지식사회의 성과와 목표 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식근로자가 생산성을 올리고 만족하도록, 성과를 올리고 지위가 향상되도록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도전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전문가’로서 할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직업을 지식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홍트리버 생각



지식 근로자는 도전을 제공하고 성과를 이루고 기여를 하기 위해 기업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기업 또한 성과를 내고 생존하기 위해 지식 근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은 지식근로자를 육체 노동자와 똑같이 명령과 지시를 하며 세세하게 관리하는 식으로 다뤄서는 안 되고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 그런 식으로 다룰 수도 없다.

 

 

 

피터 드러커의 해법은, 기업이 지식근로자에게 그의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성과를 올리고, 기여하고, 지위가 향상되고, 만족하고, 도전할 수 있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자리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경영자를 기업의 최종 성과와 지식의 적용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일의 관점

 

 

 

결국 이것은 최고경영자에게 기업을 왜 운영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이유에 따라, 경영자는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에서 GM의 최고경영자였던 알프레드 슬론이 한 행동들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GM 임원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GM을 분석하게 되었다.

 

그 중 슬론과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다.

 

슬론은 그 자신이 피터 드러커가 GM을 분석하는 일이 의미도 효용도 없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의 의견에 따라 피터 드러커의 작업을 성심껏 돕겠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한다.




 

또 알프레드 슬론은 적절한 지시를 반복적으로 따르지 않는 임원에게 극대노 하면서도 그를 해고하지 않았다.

 

피터 드러커는 그를 왜 해고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슬론은 화내기를 멈추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그가 제 몫을 하고 있잖소!”

(이 시절을 1940년경으로 생각해보면 슬론의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임원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부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실성에 위배된 것은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장기적 성과를 저해하기에 용납될 수 없다.





슬론이 만약 자신이 기업 내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면, 그는 피터 드러커의 분석작업을 허락치도 않았을 것이고, 또한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지시를 따르지 않은 임원을 해고했을 것이다.



GM의 알프레드 슬론은 경영 1세대로서 이같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슬론은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신의 권한보다 기업의 강화를 더 우선한 것이다.

 

질투 때문에 결국 뛰어난 경영자를 몰아내고 망할뻔한 핸리 포드와는 다르다.



 

결국 멈출수 없는 요소들, 즉 글로벌 단일 시장화, 기술의 발전, 인간 수명의 극적인 연장, 생산요소로서의 지식의 부상, 파괴적인 변화 등을 근거로 기업은 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기업이나 사람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적용점



1. 답은 결국 자기 스스로 원해서 하는 끊임없는 학습뿐인 것 같다.

 

세계는 변하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평생 학습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학습의 방법으로서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

 

독서와 서평이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아쉬운 점



  1. 없다.







■■■마무리



이 책이 1969년에 출판된 책이라니!

 

그럼에도 지금도 여전히 날카롭다니!



나는 이 책을 확실한 명저라고 보증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그 방향 설정에서 탁월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 제시는 비교적 확실한 근거를 중심으로 제한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의 증거를 집중적으로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드러커가 말한 변화들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시간이 지나도 그 핵심 원리는 계속 적용될 것이다.

 

다만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있고, 수십년 지난 과거의 책을 봐야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별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드러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구체적 사실들은 색이 바랬지만 그의 접근 방법과 태도는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by 피터 리

 

 

 

이 POST 가 도움이 되었나요?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를 눌러주세요!

 

 

 

 


https://hong30.tistory.com/184

반응형